6월이면 생각나는 교도관, 故 우학종 前개성형무소장
서울구치소 직원들, 5일 추념식에서 ‘6·25때 적과 맞서다 자결 항거’한 고인의 뜻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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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광식 기자 작성일 23-06-05 15:01 댓글 0본문
* 사진) 5일 추념식에서 서울구치소 직원들이 묵념하고 있다.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오면 교정 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6·25 당시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형무소를 끝까지 사수하다가 순직한 故 우학종 前개성형무소 소장이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민낙기 서울구치소장과 직원들은 구치소 내 교화공원에서 故 우학종 전 소장(1905~1950)을 추념하고, 전쟁 당시 순직한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도선에서 불과 1km 거리에 있던 개성형무소 우학종 前 소장은 북한군이 공격해오자 전 직원 비상소집 발령과 동시에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한 후 적과 맞섰다.
북한군은 개성형무소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우 소장의 가족과 뒤늦게 도착한 직원들을 인질로 잡은 채 항복을 종용했다. 하지만 故 우 소장과 형무관들은 동료 및 가족의 안전을 뒤로한 채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다.
이들은 당시 개성 시내 전체가 함락당한 상태에서도 10시간에 걸쳐 끝까지 항전했다.
그리고 함락 직전 우 소장은 “피신할 수 있는 사람은 피신하라.. 나중에 그 책임 추궁이 있거든 소장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다.
전쟁이 끝난 후 70여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숭고한 정신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민 소장은 추념사에서 “故 우학종 소장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도 이날 6·25 전쟁 당시 기관 방어, 중범자 긴급 후송 등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한 형무관 167명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충혼탑 제막식을 서울남부교정시설에서 가졌다.유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