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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생도 1기 및 생도 2기가 빚어낸 애국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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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8-06-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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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는 25일 6ㆍ25전쟁 68주년을 맞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위치한「육사생도 6ㆍ25참전기념비」에서 6ㆍ25전쟁 당시 전사한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와 생도 2기를 추모하는 참배행사를 거행했다.

사관생도 신분으로 6ㆍ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자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생도 1기 및 생도 2기 동기회와 유가족, 학교 간부, 김성일(중장) 6군단장, 육사 총동창회 임원, 포천시청 관계자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

◦참배행사는 개식사를 시작으로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 △헌화 및 분향 △묵념 △학교장 추념사 △생도대가 제창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 △폐식사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포천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故 김명곤 생도 1기생의 형수(이종숙, 94)와 조카들이 직접 찾아 고인을 애도하고 명복을 빌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는 1950년 당시, 졸업을 불과 20일 앞두고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262명 전원이 계급과 군번도 없이 사관생도 신분으로 참전했다.

◦한편, 생도 2기는 1950년 6월 1일 28대 1이라는 경이적인 관문을 뚫고 영예로운 사관생도가 되었으나, 입교한 지 25일 만에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생도 1기와 함께 혼성으로 생도대대를 편성해 곧바로 포천지구로 출동했다.

◦M-1소총이 전부이다시피 한 상태에서도 ‘불멸의 육사혼’으로 적의 엄청난 화력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포천 전투, 태릉 전투, 금곡리 전투 그리고 수원 전투 등 여러 번의 전투에서 생도대대는 격렬한 전투를 치루었다.

◦이런 분투 속에서 생도 1기생 65명과 생도 2기생 86명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정진경(중장) 육군사관학교장은 추념사를 통해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 및 생도 2기 선배님들이 빚어낸 애국충혼을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겠다”며 “선배님들이 그러하셨듯이 국민에 충성하고 국가에 헌신하는 정예장교 양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 및 생도 2기 6ㆍ25전쟁 참전기록

1950년 당시 육군사관학교에는 1년 과정을 마치고 20일 뒤인 7월 14일 임관할 예정인 생도 1기 262명과, 28대 1이라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관문을 뚫고 4년제 정규 대학 과정으로 6월 1일 입교한 생도 2기 334명이 교육받고 있었다. 6월 25일 1기생들은 대부분 외출ㆍ외박을 한 상태였지만 2기생들은 사격훈련이 예정돼 학교에 머물고 있었다.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남침하고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육군본부에서는 사관생도들을 전선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개전 당일 오후 1시께 하달한다. 즉시 전투대대를 편성해 현재 참전기념비 주변인 국도 47호선과 87호선이 만나는 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남하하는 적을 막으라는 명령이었다.

육군사관학교는 비상소집돼 학교로 복귀한 1기생 262명 전원과, 학교 잔류 및 파견 인원을 제외한 2기생 277명 등 539명으로 생도대대를 편성해 곧바로 포천지구로 출동했다. 이들이 북한의 전차와 맞서야 했던 무기는 박격포와 경기관총, 자동소총이 전부였다. 대부분 M1소총으로 무장했다. 박격포탄은 50여 발, 실탄은 1인당 56발에 불과했다.

이들이 포천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께. 뜬눈으로 밤을 보낸 뒤 다음날 오전 6시 일본 99식 소총과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수도경찰청 소속 전투경찰 1개 대대와 합류한다. 첫 전투는 오후 4시께 시작됐다. 적의 화력은 도로 오른쪽에 방어진지를 구축한 경찰대대에 집중됐다. 변변한 중화기 한 대 없었던 경찰대대는 불과 10여 분 만에 실탄이 떨어지며 철수했다.

생도대대는 이후 근접전투를 치르는 등 3시간을 버티던 중 ‘오후 7시 진지를 이탈 태릉에 있는 학교로 집결하라’는 명령과 함께 철수하게 된다. 그 사이 의정부가 적 수중에 들어가면서 생도대대는 27일 서울 동북쪽 불암산과 육사를 잇는 방어선에 다시 투입됐다. 그러나 그날 밤 적의 포격에 이어 28일 새벽 적군이 밀려들자 버티지 못하고 한강 이남으로 다시 철수하게 된다.

이후 생도대대는 편재의 판교와 수원 일대 방어선에 투입되는 등 7월 4일까지 10일 간 생도신분으로 전투를 치르고 대전으로 철수했다. 이어 7월 10일 대전 도청에 임시로 자리 잡은 육군본부 광장에서 1기생 임관 및 졸업식과 함께 생도대대는 해체됐다.

생도 1기생 임관 전까지 생도대대 전사자는 생도 1기 65명, 생도 2기 86명 등 151명이다. 이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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