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니 아이들이 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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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10-19 09:39본문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에 근무하는 장원선 씨의 첫째 주원이와 둘째 성원이는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엄마, 내일도 집에서 일해? 간식은 뭐 해줄거야?”라고 물어본다.
그녀가 지난 2월부터 유연근무제의 일종인 재택근무제를 신청, 매주 수요일은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생긴 아이들의 신나는 버릇이다.
맞벌이인 장씨 부부는 매일 아침 출근 준비에, 아이들을 학교, 어린이집 보낼 채비하느라 전쟁을 치르지만, 일주일에 수요일 만큼은 여유롭게 시작한다.
수요일이면 초등학교 1학년인 주원이의 손을 잡고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준다. 방과후에는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주고 숙제도 함께 할 수 있다. 어린이집에서 4시 쯤 넘어 돌아오는 성원이에게는 웃으며 맞아주는 엄마의 미소가 보약이다. 4월에 낳은 셋째를 돌보느라 힘든 친청엄마에게는 매주 수요일이 휴가이다.
장씨는 처음에 집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나름대로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분리해 정해놓으니 그리 어렵지 않은데다 업무효율성도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산업단지 등 개발사업 시행으로 인한 환경영향평가 업무. 재택근무자에게 집에서도 ‘환경부 환경행정포탈서비스’를 접속할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사무실과 같은 여건에서 기안도 작성하고 직원들간 메신저로 필요한 업무 등을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가 집에 있는 개인컴퓨터로 환경부 환경행정포털서비스망에 접속,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
장씨는 “1주일에 하루이긴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편하고 혹시 아이가 아플 때는 병원도 데려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육아에 있어서 재택근무가 조그만한 ‘숨통’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재택근무제가 활성화 돼 있지 않아 이용하는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도 어색한 것은 사실”이라며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재택근무 시스템을 개발하고 육아에 신경써야 하는 직원에 대한 직장의 배려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근무하는 강우창 연구원은 매주 금요일에는 오전에만 근무한다. 주 40시간을 지키되 요일별로 근무시간을 달리해 재량 껏 쓸 수 있는 집약근무제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연구원은 월·목요일은 기존처럼 8시간을 근무하고 화·수요일에 10시간을 근무함으로써, 금요일은 오전 근무(4시간)만 하고 오후를 자기계발이나 여가활동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강우창 연구원은 집약근무제를 이용해 금요일 오후 시간대를 자기계발, 여가활용 등에 이용하면서 삶에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
그는 “제 일이 연구분야다보니 연구논문 작성이나 참고자료 검토, 대학강의 출강 등을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집약근무제를 신청하게 됐다”며 “금요일 오후에는 이와 관련한 활동도 하고 특히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에도 좀 더 신경을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매주 목요일 저녁에 하고 있는 합창단 연습에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자기계발을 위한 어학, 독서 등에도 여유가 생겨 좋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원은 “우리 직원들은 대부분 유연근무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아직까지 관리자의 입장과 업무 특성에 따라 많이 활용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 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이해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사무실에서 채운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일이 일차적이고 가정은 이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들의 해결방안 중 하나로 지난 8월부터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게 유연근무제이다. 획일화된 공무원의 근무형태를 유연근무제를 통해 개인·업무·기관별 특성에 맞게 다양화함으로써 생산성 향상과 사기를 진작시키는 한편, 일-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근무조건을 갖춤으로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도에서 도입된 것이다.
지난 5월부터 2개월간 시범실시 기간을 거치고, 본격적으로 실시된지 불과 3개월도 채 안됐지만 효과는 위 사례처럼 눈에 띈다.
행정안전부는 시범실시 대상 23개 기관 1238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에 대한 평가를 조사한 결과, 직무 및 조직만족도가 향상(응답자의 76%)되고 업무효율성(66%), 업무성과와 생산성이 높아졌다(60%)고 응답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략적으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적극 추진중이다. 영국은 국가공무원의 20%인 10만명이, 지방공무원은 50%인 130만명이 시간제공무원이며, 미국은 연방공무원의 5%인 10만3000여명이 원격근무제를 이용하고 있다. 일본도 현재 전체근로자의 15%인 1000만명이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5개 민간기업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는데 만족도는 꽤 괜찮게 나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부터 자유출근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잔업시간이 주는 등 업무효율이 증가하고 임직원의 업무만족도가 대폭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도 자체 설문조사에서 96%가 일과 삶의 균형에 도움이 되고 71%가 성과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유연근무제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기관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9월말 기준으로 유연근무제는 중앙에 3882명, 지방에 2483명 등 총 6365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들 중 95.7%가 1일 8시간 근무를 준수하면서 출근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시차출퇴근제(3929명)와 주40시간 근무보다 짧은 시간을 근무하는 시간제근무(2160명)을 이용하고 있었으며, 재택·원격근무제 이용자는 156명으로 2.5% 수준이었다.
유연근무제 이용 목적으로는 효율적인 업무수행(59.4%)이 가장 많았으며, 육아(11.5%)와 자기계발(11.0%)도 높은 편이다.
주거지 인접지 ‘원격근무용 사무실(스마트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원격근무제의 경우 현재 시범운영 계획인 ‘스마트워크센터’ 확충에 따라 그 수가 점점 증가할 것으로 행정안전부는 전망하고 있다.
진종순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부문에서의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상세한 세부지침을 마련하고 일선 관리자의 일관성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며 “특히 유연근무제의 성패는 복잡한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일선 관리자들이 쥐고 있기 때문에 제도의 장점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 정부의 정책은 정부조직 내부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그러므로 공공부문에서 유연근무제가 정착된다면, 이는 우리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고, 우리 사회가 처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인 저출산·고령화의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적합한 유연근무제 찾기>
현재 유연근무제는 시간근무제 등 9개의 형태로 분류된다.
정규근무시간보다 짧은 시간(주 15~35시간) 동안 근무할 수 있는 제도인 시간근무제는 모든 업무분야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일반행정직의 경우 창구 및 유선 민원처리 등 정형화된 업무나 대체근무가 용이한 업무, 전문적 지식 활용 분야가 이에 적합하며, 휴일·야간전담이 필요한 공공 보육시설 업무, 병원의 의사·간호사 등 24시간 근무부서 업무, 박물관 등 휴일근무 또는 야간개장이 필요한 업무에도 시간제근무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시간제근무를 이용하는 공무원의 남은 근무시간 범위에서 계약직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근무시간선택제는 1일 8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 단, 근무시간은 매일 다를 수 있으나 주40시간과 주5일 근무를 준수해야 한다.
이 제도에 적합한 업무는 개인별 여건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연구직·실험직, 또는 민원인들과 접촉이 거의 없이 개별적·독립적 수행이 가능한 업무가 적합하다.
집약근무제의 경우 주40시간을 준수하면서 하루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근무시간선택제와 비슷하지만, 1주일의 근무일을 5일 미만으로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제도는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업무수행에 지장이 없는 업무가 적합하다. 예를 들어 행정안전부의 비공개기록물 재분류업무, 징계안건검토업무, 국토해양부의 토지수용재결업무 등이 이에 속한다.
재택·원격근무는 국민과의 대면접촉이 거의 없는 업무, 결제.보고가 적은 독립성이 강한 업무, 기관간 업무협조가 적어 조직운영의 독립성이 높은 업무, 현장에서 행정처리가 이루어지는 조사, 단속 업무 등이 이에 적합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유연근무제 운영지침’을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기관에 시달했다. 지침에 따르면, 각 기관은 유연근무제를 신청하는 직원이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이를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유연근무제로 인해 대국민서비스 소홀, 업무성과 저하 등이 나타나지 않도록 근무기강을 확립토록 하고 있다.
황보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