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 같은 30분이 금쪽 같은 두 아이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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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8-17 09:34본문
이 달부터 공직사회에도 근무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조절해 쓸 수 있는 유연근무제가 본격 실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직자들도 재택근무와 주 3∼4일 근무는 물론 출근시간도 자율적으로 선택해 쓸 수 있게 됐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두 달간 전국 23개 기관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를 시범 실시한 바 있다. 여기에는 공무원 1천2백여 명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행정안전부는 ‘획일화된 공직사회에서 이 정도 인원이 신청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용자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시범 운영에 참여한 공무원의 약 85%가 유연근무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약 76%가 근무만족도가 높아졌고, 약 65% 이상이 업무효율성·책임감·집중도도 높아졌다고 답했다.
잘만 활용하면 개인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조직의 업무생산성에도 도움이 되는 유연근무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며, 또 어떤 혜택이 있는 지 사용자들의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봤다.
“도로 위에서 낭비한 한 시간…출근 스트레스 없어졌죠”
환경부 정보화담당관실에 근무하는 김신엽 씨는 한 시간 늦은 출근으로 근무효율성은 두 배 이상 높아졌다. |
수원에서 과천 청사까지 출퇴근 하는 그에게 아침 출근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용하는 과천-의왕간 고속도로는 수원, 화성, 오산 등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차량들의 행렬로 아침마다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출근시간이 한 시간 늦춰지면서 보통 1시간 이상씩 소요되던 그의 아침 출근길도 25분으로 대폭 단축됐다.
“일단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졌어요. 보통 1시간 이상 도로에서 소비한 후 사무실에 들어오면 아침부터 지치게 마련인데, 요즘은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여유 있게 하루 일과를 계획할 수 있어 업무 효율도 더욱 높아졌어요”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오전 중 아내를 도와 아이들을 챙길 여력이 생기면서 집안 분위기도 좀 더 화목해졌다. 주변 동료들도 처음에는 다소 낯설어 하는 눈치였지만 지금은 의례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시골서 두 아이 데려와…내겐 금쪽 같은 30분”
#2. 김도영(문화체육관광부 인사과)씨의 경우 오전 9시 30분을 출근시간으로 정했다. 탄력근무제는 원래 1시간 단위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 시범 이용해본 후 30분 단위로 끊어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이 같은 방식을 택했다.
두 자녀를 키우는 김 씨에게 아침시간 30분은 아주 금쪽 같은 시간이다. 단, 30분의 여유가 더 생겼을 뿐인데 아이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학교에 데려다준 뒤 출근하기까지의 오전일과가 한결 수월해졌다. 늦은 귀가에 자택인 개포동에서 광화문까지의 출퇴근 거리까지 감안하면 예전엔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인사과 김도영 씨는 유연근무제를 사용한 뒤부터 그동안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
그는 “유연근무제가 아니었다면 사정상 오전시간에도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것”이라며, “30분 늦게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반나절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요즘에는 아이들이 학교 들어가는 것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출근할 수 있어 안심이 되고, 그만큼 일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졌다. 김 씨는 “바쁜 출근시간에 30분은 아주 요긴하다. 특히 아이 키우는 사람에겐 이런 심리적인 효과도 무시 못 할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미뤄둔 과제 해결하는 사흘간의 달콤한 휴무”
#3. 조영주(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공개서비스과)씨는 유연근무제 덕분에 요즘 주말이 즐겁다. 그는 월~목요일까지 주 4일 근무하는 대신 금·토·일 3일의 휴무를 가질 수 있는 ‘집약근무제’를 선택했다.
그동안 명절 때나 찾아뵙곤 하던 부모님 댁에도 요즘엔 주말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고, 평소 점찍어 두었던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예전엔 ‘거리가 멀다’ ‘피곤하다’는 이유 등으로 모두 미뤄왔던 과제들이다.
조 씨는 “업무시간이 꼭 남들과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초과근무수당은 줄었지만 자기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과근무수당 조금 덜 받는 것과는 바꿀 수 없는 큰 혜택"이라고 말했다.
공직사회 경직된 분위기 푸는 것이 남은 과제
이렇듯 잘만 활용하면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생산적인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연근무제. 그러나 여전히 경직된 공직사회 분위기는 사용자들 모두 부담으로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다.
김신엽 씨는 “이런 제도가 일시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정착돼야 제도를 이용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기관마다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을 동참시키는 방법도 한 번 고민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도영 씨는 “업무상 아침에 늦게 올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제도가 시행돼도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불필요한 오전 회의를 줄이거나 동료들 간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영주 씨의 경우에도 “부서장의 허가를 받는 것이 필수라서 업무에 지장이 없다 해도 괜히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며, “시범 이용해보면서 스스로도 만족했지만 과장님도 지금은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는 장려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전성태 행정안전부 윤리복무관은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 등 하드웨어는 세계적인 수준인 반면, 아직까지 소위 ‘눈도장’으로 대변되는 대면중심의 조직문화와 근무시간·근무량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산업시대 근무제도에 익숙하다”며, “이를 바꿔 업무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성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유연근무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연근무제란?
유연근무제란 획일화된 공무원 근무형태를 개인별·업무별·기관별 특성에 맞게 다양화해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조직관리 방안으로, 근무형태·시간·장소·방식·복장 등을 자유롭게 하는 ▲시간제근무 ▲시차출퇴근제 ▲재택·원격근무제 등 9가지 형태가 있다.
대표적으로 하루 8시간 근무형태는 유지하되, 출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시차출퇴근제, 하루 여덟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근무시간선택제 등이 있다.
또한 주 40시간 근무를 사나흘 동안 몰아서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집약근무제와 기관과 개인이 합의한 시간을 전체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재량근무도 올해 첫 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