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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옷 줄게 헌옷 다오…역발상이 성공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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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9-08 08: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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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2가의 한 허름한 건물 2층. 사무실 한쪽에는 천장이 닿을 만큼 헌옷과 폐가죽 등이 수북이 쌓여있고 몇몇 직원들은 그것들을 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한쪽 어디인가에서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

‘리블랭크(Re□)’. 이 회사는 아름다운가게의 에코파티메아리 창립멤버들이 독립해 세운 재활용 전문 패션기업이다. 지난 2008년 설립 이후 헌옷, 천 갈이 업체에서 수거한 폐가죽, 종이 등 생활 속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신제품 옷·가방을 만들고 있다.

‘역발상’
리블랭크 채수경 사장이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성공의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말이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할 때 버려진 것들이 아까워 재활용하는 구상을 많이 해 봤어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버려진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것으로, 창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일반 의류업체들처럼 디자인이 정해진 후 대량생산라인에서 필요한 원단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아니라, 모아둔 재료를 가지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의 강도는 훨씬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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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작업조건이지만, 젊은 디자이너들의 꿈이 영글고 있는 리블랭크 작업장.

“간혹 디자인이 안나와 전전긍긍하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뛸 듯이 기쁘죠. 거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통에 있었던 물건이 제가 디자인한 새로운 제품으로 매장에 진열돼 있는 모습을 보면, 거기서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채 사장)

여기서 만든 제품은 패션 중심지인 명동과 압구정동, 신사동의 셀렉트샵에서 리블랭크 브랜드를 달고 판매된다. 헌 것으로 만들었으니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헌옷 등의 수거와 해체,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디자인과 생산은 그 값어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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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블랭크에서 가죽자켓과 셔츠를 재료로 만든 가방, 소파가죽을 이용해 만든 필통.

채 사장은 5~6년 전 잘 다니던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를 그만뒀다. 야근에, 주말도 없고 시키는 일 하는 것 말고는 창의적인 활동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늙을 때까지 질리지 않는 일을 찾고 싶었다. 의류회사 다니는 친구 2명과 의기투합해 리블랭크를 만들었다.

정다운씨가 직접 모델이 돼 폐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선보였다.
정다운씨가 직접 모델이 돼 폐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선보였다.
이렇게 만든 회사에 직원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자원순환과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 회사의 이념과 철학을 이해하고 참여를 주저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올 2월에 졸업해 입사 3주차 됐다는 정다운 씨는 리사이클링에 관심이 많다.
“패션시장이 쓰고 그냥 버리는 소비지향적인 측면이 강하잖아요. 저는 이게 싫었어요. 의류회사는 디자인이 결정되면 거기에 따라 대량생산을 하는데, 인기가 없으면 결국 재고로 쌓여 있다가 버러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정 씨가 생각하는 진정한 디자이너는 디자인해서 나온 제품이 소비자들이 쓰고 난 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까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대기업에 다니는 디자이너들은 이 부분까지는 신경 안 쓰니 제 잣대로 보면 디자이너가 아닌 거죠.”

‘일반회사에 취직 않고 엉뚱한 짓 한다고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묻자, “걱정 많이 하시죠. 그런데 제가 추구하는 일이 아닌 걸 어떻게 합니까? 부모님 강요로 되는 것도 아니고. 헌신을 다해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매장에 전시된 것을 보시면 ‘괜한 걱정했다’ 생각하시겠죠.”

작업대에서 여러 헌옷을 앞에 두고 디자인에 골몰하고 있는 김영롱 씨. “제가 이곳에 취직한 동기요? 헌옷을 가지고 새옷을 만든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런데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창의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의상매장을 자주 찾았던 김씨는 이 회사 제품의 디자인을 보는 순간 독특한 매력이 있어 마음에 두고 있었단다. 입사 1년차인 김씨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위치이지만,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 만든 옷이 매장에 전시된 적도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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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재료로 쓰일 헌 소재를 재단하고 있는 김영롱씨.

‘일반 의류회사에 취직할 생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글쎄요? 학교 공부할 때 독립디자인브랜드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실력이 아니라 학력, 어학점수, 자격증 등 스펙을 우선시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지난해 리블랭크는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참여하는 지역 자활공동체와 협력해 일자리를 지원함으로써 제품생산 과정에서 ‘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리블랭크는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이 많이 부족하다. 전문적으로 재무와 회계, 영업 등을 맡은 인력도 없고, 생산시스템도 고비용 구조다. 손익분기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년에 생산시스템을 개선하고 2012년에는 단독매장을 갖겠다는 꿈은 확고하다. 이처럼 꿈을 하나하나씩 채워나갈 빈공간이 있기에 리블랭크 직원들은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을 선풍기 바람만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이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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