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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이순신장군 동상 제작 참여자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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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3-3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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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기 서울시청이죠. 제가 그때 이순신동상 제작에 참여한 사람입니다만...”
“여보세요. 신문기사를 보고 전화 드렸는데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찾는 것 같아서...”

서울시는 지난 2월 ‘68년 이순신장군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을 찾는다는 기사가 나간 후 3일 동안에 이렇게 접수된 제보 전화가 22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초, 서울시는 이순신장군 동상 보수를 위해 실시한 내시경 진단과 외관조사 결과를 토대로 자문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동상 뿐만 아니라, 기단부에 대한 보수 방안 수립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당시 주물작업 및 기단부 시공방법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어 원형 보존에 적합한 보수방법을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상황, 이에 서울시는 이에 대한 내용과 기술 등을 알아 보기 위해 “68년 동상 건립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기술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제공한 바 있다.

이때만 해도 서울시는 참여자가 나타날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완벽한 동상 보수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동상이 40여년 불혹을 넘긴 나이임을 감안 할 때 당시 제작자들이 원기 왕성한 청년이었다고 해도 어림잡아 70~80세는 족히 넘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 22건의 제보가 들어왔고 이중 15건은 동상제작 참여자의 주변 사람들이였고, 7건은 점토조각, 주물작업 등 동상제작에 직접 참여했거나 관련자 분들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3월, 제보자들 중 동상 제작에 직접 참여한 6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1명을 초대하여 동상 제작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자문위원들과 토의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이순신 동상 제작에 관해 술술 풀리는 의문점들...

<2층건물 높이만한(6.5m) 대형동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천막 뚫고 하이킥~>

청동 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찰흙으로 동상 전체 모습을 만드는데, 처음에는 5m 규모로 계획하여 조각중이었으나, 세종로가 100m로 확장됨에 따라 주변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동상 규모를 크게 해야 한다는 상부 지시에 따라 지금 크기인 6.5m로 제작 되었다고 한다.

당시 점토조각 작업장은 가설 작업장으로 천정은 투명 프라스틱으로 설치되었는데 동상 크기를 5m에서 6.5m로 늘리기 위해 천정 플라스틱을 뚫고 투구 등 점토 조각을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 김세중 작가의 제자로서 점토 조각 작업에 참여했던 백현옥(70세)씨가 기억하는 스승 김세중 조각가는 자택에 각목과 비닐을 이용하여 가건물 형태로 작업장을 짓고, 초봄부터 여름까지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4~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점토와 석고작업에 열중하는 등 훌륭한 이순신장군 동상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8톤 규모의 충무공 동상을 어떻게 운반했을까?... 광화문네거리 전동차도 멈추게 하고>

작년 10월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동상을 안치하면서 “세종대왕 납시오!” 수송 작전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당시 충무공 동상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당시 화일전력이라는 회사에서 크레인 기사로 근무했던 이기종(72세)씨 설명에 의하면 춘천 의암댐 공사장에서 작업를 마치고 청평댐으로 이동한 첫날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일 아침 광화문사거리에서 충무공 동상을 들어 올려야 하니 크레인을 긴급출동 시키라는 연락이 와서 작업을 중단하고, 밤새 이동 준비를 하여 새벽 4시에 청평을 출발 오전 10시경에 광화문사거리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 사용된 크레인은 당시 일본에서 수입 해 온 최신 장비였으며 무게 8톤 규모의 이순신장군 동상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국내에서 유일무이 했던 크레인으로써 한번 사용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등 아주 귀하신 몸이었다고 한다.

대낮에 세종로의 모든 전차를 멈추게 한 후 동상 안치 작업을 하였는데, 트레일러에 실린 충무공 동상이 도착하자마자, 취재 열기가 뜨겁게 달구어졌다고 한다.

동상 거치 작업을 하기 전 고위 관계자로부터 동상의 무게가 8톤이나 되니 작업하다 떨어뜨리는 날에는 큰일난다며 겁을 주기도 해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크레인 성능이 좋아서 힘들이지 않고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68년 동상 제작 참여자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동상 제작 이야기

<사연 1> 나의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동상 주조 기술자였다

“공장 앞마당에는 트럭으로 실어 온 포탄껍질, 놋그릇, 고물상 수집품 등으로 산더미처럼 가득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몇날 며칠 동안 밤새도록 불을 지펴 쇳물을 만드셨고 가끔 탄피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구요”

그때 당시 중학생이었던 길희숙씨(56세)는 오래된 흑백 사진 여러장을 보여주며, ‘대광공업사’(당시 성수동2가 소재)를 운영 했던 선친이 이순신장군 동상 주조를 맡아, 주야로 땀을 뻘뻘 흘리시며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 길광춘씨에 대하여 얘기를 하려면 ‘김낙서’라는 분을 빼놓을 수 없는데 김낙서씨는 당시 대형 동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자재, 공장 등을 보유한 국내 유일한 분이었다고 한다.

길광춘씨는 14세 때부터 외삼촌인 김낙서씨로부터 기술을 배웠으며 김낙서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조카인 길광춘씨에게 주물 도구 일체를 넘겨주어 대형 동상 주조의 맥을 이어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사연2> 동상 주재료인 구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당시 대광주조공장에서 주조기술자로서 일 했던 김주남(65세)씨와류용규(63세)씨는 주조작업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동상의 주재료인 청동은 구리와 주석 등의 재료가 일정비율 배합되어 만들어진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열악한 당시 상황에서 구리 공급이 어려워 처음에는 국방부에서 공수해 온 탄피를 사용했지만 몇 번의 주조작업 과정에서 주물이 제대로 주입되지 않는 등 주조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탄피는 모두 버리고 해체된 선박에서 나온 엔진, 놋그릇, 놋숟가락과 같은 일반 고철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마저도 양이 모자라 한 번에 주물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재료가 조달 되는대로 작업을 하다 보니 동상 재질과 두께가 고르지 못했으며, 색상 또한 균일하지 않아 청동 고유의 색을 내지 못하고 작가가 선정한 색상(짙은 청록색)의 페인트와 동분을 섞어 표면을 칠했다고 한다.

6조각으로 나누어 주조된 동상 몸체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이음부위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용접을 하였는데, 동상재료와 동일한 성분의 용접봉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 부산 미군부대에서 구해온 구리 용접봉으로 용접을 시행하였으며, 동상 외부는 전체를 용접하였으나, 내부는 군데군데 밖에 하지 못했으며, 용접기술이 열악하여 지금쯤은 많은 균열이 발생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연3> 동상 주조 과정 견학차 현해탄을 건너다~!

“당시 국내엔 제대로 주조된 동상이 없었던 상태였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조작업은 침체기였어요. 동상 건립 주최측의 배려로 주조기술자 3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1개월간 견학을 다녀왔지요”

동상 건립은 서울신문사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추진하였는데 동 위원회에서 실무를 맡았던 한교택(80세)씨는 주물기술자 3명과 함께 일본으로 견학 다녀 온 얘기를 들려 주셨는데, 아쉽게도 당시 기술자들은 돌아가셔서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당시 주물기술자로 참여 했던 김주남(65세)씨는 청년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순신장군 동상 주물 작업에 꼭 필요한 기술자로 인정받아 군생활을 하면서 동상 주조 작업에 참여하였는데, 군인 신분이라 일본 견학까지는 동참 하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견학을 다녀온 동료 주조기술자의 말에 의하면 일본의 주조방법도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낯설지 않았으나, 주물 배합 및 주조 방법 등 일부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현대식 기법을 이용한 국내 주조기술은 매우 뛰어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2년간의 진통과 산고 끝에 마침내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동상이 완성되었고, ‘68년 4월 27일 광화문사거리에서 동상 제막식이 거행 되었다.

서울시는 참여자로부터 기증 받은 기록물, 사진, 영상물 등 소장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예정이며, 이 자료를 토대로 원형에 가깝도록 보수하고, 수집된 정보를 스토리텔링 소재로 발굴해 도시마케팅에도 활용할 계획이며, 이순신장군 동상 보수 작업은 자문위원 및 참여자 의견을 종합하여 일반적인 단순 보수가 아닌, 근원적인 보수 방안 수립을 위해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연구·검토하여, 천년을 지켜낼 수 있는 건강한 이순신장군 동상으로 재탄생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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