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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그리움일랑 저 물에 흘려보내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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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6-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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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만 흐르며 깊어져 남해 바다로 5백30리를 흐르는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데미샘에서 시작된다. 마이산을 바라보고 사선대(四仙臺)를 지나 섬진강댐을 거쳐 회문산 자락에 이르는 섬진강은 장구목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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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이 휘돌아가는 지형에서 ‘물우리’란 이름이 비롯된 전북 임실의 물우리마을에서 바라본 회문산. 그 산중엔 바위로 된 천연의 문, 회문(回門)이 있다. 그래서 회문산(回門山)이다. 반석 같은 웅장한 바위들이 4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고, 우뚝 솟은 봉우리는 늘 구름에 잠겨 있다.

이 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임실 덕치초등학교에서 김용택 시인이 오랫동안 섬진강을 배경으로 시를 썼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이 김용택 시인의 고향인 진메마을이다.

“저 강가에 얼마나 고기가 많던지 고기 반 물 반 그랬어. 어머니가 ‘용택아, 다슬기 잡아 가지고 올 텡게, 불 때고 있어라’ 하고 나가신 뒤 불을 때고 있으면 금방 가서 한 바가지 잡아가지고 오는디… 바가지만 가지고 가서 손으로 이렇게 더듬으면 한 주먹 되고, 이렇게 하면 또 한 주먹 되고… 그래서 금방 한 바가지를 잡아 가지고 왔어.”
이제 그런 낭만은 이 강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시인도 보이지 않고, 시인의 어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내게 들려주던 목소리만 강물 소리에 섞여 들린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면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문득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이 물결쳐 온다. 그리운 추억 하나씩 안 가지고 사는 사람 어디 있으랴. 그래서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진다’고 러시아 시인 푸슈킨은 말하지 않았던가.

푸르디푸른 저 물빛 속으로 강은 얼마나 깊을까. 강가에는 아직 만든 지 오래지 않은 배 한 척 매어 있고 흰 줄이 강 건너 나무에 걸려 있다. 진메마을에서 천담리로 가는 길, 고요하고 한적한 이 길의 주인은 다슬기국처럼 푸른 강물과 연둣빛 나무와 풀이다.

천내리와 구담리를 합해 천담리로 이름이 바뀐 이곳엔 활처럼 휘어 흐르고 못(潭)처럼 깊은 소(沼)가 많다 하여 천담(川潭)이라고 부른다. 천담리에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촬영된 안다물(구담마을)은 그리 멀지 않다. 구담마을, 언제나 조용하다. 빈집이 여러 채 그림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흐흐흐… 볼수록 기묘한 ‘요강바위’

가고 온다. 우주 순환의 섭리를 이곳 구담마을의 빈집에서 느낀다. 느티나무 숲 우거진 구담마을 동산에서 바라본 섬진강은 마치 활처럼 휘감아 돈다. 섬진강 물줄기 중에서 가장 빼어난 정경 중 한 곳인 전북 순창의 회룡마을로 건너가는 강길 역시 징검다리다.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바위에 주저앉아 물의 소리를 듣는다. 동행자 중 한 사람이 말을 건넨다.

“좋은 물소리는 또랑(작은 개울)에서 흐르는 소리가 최고예요. 우렁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맑지 못해요.”

▲전북 순창군 회령마을을 감아도는 섬진강 줄기. ▲▲임실군 영계면 장구목에서 볼 수 있는 요강바위.
▲전북 순창군 회령마을을 감아도는 섬진강 줄기. ▲▲임실군 영계면 장구목에서 볼 수 있는 요강바위.

그렇다. 댓잎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소리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한밤에 듣고 있으면 정신이 싸아…해지면서 해맑아지지 않던가. 물소리에 젖은 채 한 발, 한 발 걷다가 보니 회룡마을에 이르고,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자 장구목이다.

임실의 영계면에 속한 장구목은 영계면에서 가장 안쪽이어서 ‘안영계’ 또는 ‘내령’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장군목’ ‘장구목’ ‘장군항’ ‘물항’으로도 불린다. 임실의 기산(3백45미터)과 순창의 용골산(6백45미터) 사이 산자락 밑에 위치한 장구목 부근엔 ‘아름답다’ ‘좋다’라는 경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저마다의 진경을 자랑하는 수많은 바위들이 강을 수놓은 가운데 보면 볼수록 기기묘묘한 바위가 요강바위다. 큰 마을 사람들이 저녁 내내 ‘일을 봐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이 요강바위는 한때 잃어버렸다 다시 제자리에 놓여 있다.

장구목을 지나자 동계면의 구미리에 이른다. 구미리의 강경마을을 지나며 강물은 깊어져 소리를 잃는다. 강의 물이 맑아 소녀의 눈동자 같고 은어가 많이 살았다는 적성강(순창군 적성면을 흐르는 구간)이다. 흐름도 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니 공자가 시냇가에서 설파한 한마디가 떠오른다.

“가는 것이 저 물과 같도다!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그래, 저 물처럼 우리도 시간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 어느 날 문득 망망대해인 큰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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