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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제가 썩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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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4-04-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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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년 만에 소설집을 펴낸 작가 이외수 씨가 기자간담회에서 예술가는 세상이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작 소설집 <완전변태>에 수록된 단편 10편은 물질적 풍요가 삶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우리가 진정 꿈꾸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도덕과 양심이 사라진 삶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표제작 완전변태는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 속에서 꿈꿀 자유를 박탈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 <25>의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을 타는 수병이었다. 그때 잠수함에는 산소측정기가 없어 토끼를 태웠다.

 

토끼는 산소 부족에 인간보다 먼저 반응하는데, 토끼가 꾸벅꾸벅 졸면 산소가 부족하다는 뜻이어서 잠수함은 수면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어느 날 토끼가 죽자 수병 중에서 산소 부족에 가장 민감하던 게오르규가 토끼의 역할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체험을 한 게오르규는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즉 시인은, 지식인은 사회의 이상(異常)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알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중국 송 시대의 정치가, 문인 범중엄(范仲淹·989~1052)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이라는 명구를 남겼다.

 

천하의 근심을 남들보다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남들보다 뒤에 즐긴다는 뜻이다. ‘악양루기(岳陽樓記)’라는 글에 나오는 이 선우후락은 나중에 중국 문명의 보배와 같은 정신유산이 되었다. 천고에 썩지 않는 말이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을 배워 아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성숙과 동시대인들의 발전, 번영을 위해 애써야 한다.

 

사회의 이상상태를 고발하고 고치고,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를 남들보다 먼저 소리쳐 알리는 게 문인이나 지식인의 역할이다. ‘지금 여기의 절실함 차원을 넘어 저기 멀리 나중의 일까지 앞당겨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유망한 젊은 작가가 본명을 버리고 필명으로 소설을 펴내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에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4월의 공기>라는 소설을 낸 작가의 이름은 최순결이다.

 

이 가명의 작가에 대해 이라는 출판사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명망 있는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유명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라고만 소개하고 있다. 문단에서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남성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에 자살한 러시아 태생의 유대계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과 같은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에밀 아자르가 자신의 필명임을 밝혔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K 롤링은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소설 <쿠쿠스 콜링>을 발표했다. 명성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을 평가받고 싶어서 필명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최순결 씨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이미 인정을 받은 작가가 필명을 쓰게 된 이유는 순수한 작품성보다는 이름값으로 작품이 저울질되고 문단 권력이나 출판사의 눈치를 보느라 작가적 양심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설을 내면서 그동안 문단과 문학출판 시장에 얽매여 여러모로 영혼을 팔며 살아온 것을 참회한다.”는 말을 했다.

 

책을 낸 뒤의 이메일 인터뷰에서는 자본의 요구에 따라 소설의 주제와 스타일을 바꿔줬다. 예술을 버리고 달콤한 빵을 택했다. 무척 달았다. 하지만 금세 씁쓸해져서, 다시는 영혼을 팔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엔 창작 과정에서 어떠한 간섭이나 개입 없이 오직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 생각에서 이름도 최순결이라고 지었을 것이다.

 

다른 작가들과 최씨의 말을 종합하면 주요 문학출판사들이 주최하는 문학상의 경우, 수상 후보에 오른 작가들에게 수정을 요청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수정 요청에 호응하는 작가가 결국 상을 받는다.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언이 아니라 상업적 관점에서의 수정 요구인데, 이를 통해 작가를 장악하고 길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세 번을 완전히 다시 쓴 적도 있다고 한다. 남자 주인공의 외모를 부각시키고 연애 코드를 꼭 넣어야 책이 잘 팔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단에는 영향력 있는 권력자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등단이나 수상, 대학 강의 등을 매개로 신인들과 후배, 제자들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문예창작과 교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처럼 행세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생산된 작품까지 입맛대로 수정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출세하고 상을 받은 문인들은 그 권력의 일부를 그대로 누리고, 나아가 자신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게 아닐까. 사람은 원래 욕하면서 닮는다.

 

소화제를 먹으니 소화제가 소화가 안 되고, 방부제를 넣으니 방부제가 썩더라는 농담이 있다.

 

시대와 사회의 방부제, 잠수함의 토끼와 같은 존재여야 할 작가들이 문단권력에 굴복하고 스스로 썩어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는 대체 어디의 누구에게서 이 사회의 희망과 정의를 찾을 것인가.   *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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