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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슬픔을 이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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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4-05-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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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고레츠키(1933~2010)의 제 3슬픈 노래들의 교향곡2악장은 폴란드 자코파네 게슈타포 본부의 지하실 벽에 씌어진 낙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헬레나 반다 블라추지아코브나라는 열여덟살 소녀는 감옥 밖에서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남겼다. “울지 마세요. 엄마, 울지 마세요. 가장 순결하고 선한 천상의 여왕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거예요.”

 

197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전쟁과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폴란드인들을 위한 일종의 진혼곡이다. 성악으로 들려주는 가사의 내용은 15세기 폴란드 승려의 애통해 하는 노래, 소녀가 감방의 벽에 칼질로 새겨놓은 기도문, 폴란드의 슬픈 민요다.

 

고레츠키를 국제적인 명사가 되게 한 이 작품의 원천은 슬픔이다. 세 개의 악장은 느린 렌토와 라르고의 빠르기로 되어 있으며 장례 음악처럼 조용하게 연주된다. 강대국 사이에서 장기간 약소국으로서의 고통과 수난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폴란드에는 고레츠키와 같은 탁월한 작곡가, 우수한 작품이 참 많다.

 

그렇다. 예술의 원천은 슬픔이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가 겨우 31세로 세상을 떠난 프란츠 슈베르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이해를 돕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슈베르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전 세계의 노래 중 정점에 섰다고 할 만한 가곡집, 특히 겨울 나그네를 듣노라면 그의 풀 길 없는 슬픔이 전달된다. 만년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역시 마찬가지다. 추운 겨울날 그의 노악사를 불러본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슬픔이 인류 보편의 것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춘향이 마음’ ‘울음이 타는 가을 강등의 시집을 냈던 박재삼(1933~1997)시인은 가슴에 거대한 울음덩어리를 안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에는 울음 눈물 가을이 참 많이 등장한다. 한국의 전통적 서정과 한이 깃든 시편이 많다.

 

아이를 잃은 정지용(1902~1950)은 그 슬픔을 유리창이라는 시에 담아 남겼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많은 슬픔 중에서도 가장 참담하고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식을 잃은 슬픔일 것이다. 독일의 여성 판화가 케테 골비츠(1867~1945)자식의 죽음’(1925년 작)이라는 작품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자식의 관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슬픔과 절망의 극치처럼 보인다. 아니 이 작품이 특히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그 관이 마치 침몰된 여객선 세월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일을 겪게 된 것일까. 2주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시신도 찾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한국인들은 지금 슬픔과 죄의식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무엇으로 이 집단 울분과 슬픔, 고통을 달래고 치유할 수 있을까. 결코 잊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을 것처럼 상처와 슬픔이 크다.

 

하지만 그러기에 예술이 더욱 중요하고 그 존재가치가 빛난다. 우리는 시인 T.S 엘리어트 덕분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고, 김춘수를 알고부터 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남수라는 시인 덕분에 우리는 새의 순수를 더 잘 알게 됐다.

 

이 슬픔과 분노 속에서 듣고 싶은 음악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2부활이다. 독일 시인 클로프슈토크(1724~1803)부활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나/ (중략) /가혹한 사랑의 투쟁 속에서/나는 솟구쳐 오르리라/ (중략)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나/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죽음을 모티프로 부활을 노래한 이 교향곡을 말러는 6년이나 걸려 완성했다. 말러의 교향곡 10개 중에서도 유난히 종교적 색채가 짙은 곡이라고 평가되는 이 작품은 5악장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같은 해에 잃은 말러는 이어 여동생까지 숨지는 슬픔을 겪으면서 곡을 완성해 나갔다.

 

교향곡 1거인의 죽음을 보여주듯 드라마틱한 1악장에 목가적인 2악장이 잇따르고, 기괴함과 익살이 뒤섞인 3악장을 거쳐 한 줄기 빛이 당도하는 4악장이 듣는 이를 고무시킨다. 그리고 드디어 긴 고난과 투쟁 끝에 심포니의 절정을 이루는 5악장이 우리를 부활로 이끌어간다.

 

슬픔을 이기는 힘을 우리는 대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말러를 다시 들으면서 2014년 봄의 이 비극을 되새긴다. 그리고 모두가 조금이라도 힘을 다시 얻기를 소망한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것이 슬픔을 이기게 해준다.   *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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