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막걸리에 주목해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 11-10-04 08:44본문
막걸리가 더 좋아지기를 희망하는 분들은 이런 말을 한다.
“외국인들이 때때로 세제통으로 오인하는 비닐 패트병으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다. 트름이 나지 않고 숙성을 거친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1000원짜리 말고, 값이 더 나가는 고급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그 재료를 신뢰할 수 있는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감미료를 넣지 않는 막걸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찾아오는 고객을 환대하는 막걸리 양조장이었으면 좋겠다.”
또 뭐가 있을까? 막걸리를 좋아하는 소비자로서 어떤 희망을 더 품을 수 있을까? 나더러 하나를 더 보태라면, “그런 막걸리가 존재한다면, 그 막걸리를 좀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유통구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막걸리 양조장이 지금 대한민국에 몇개나 있을까? 그 개수가 아마도 한국 막걸리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보겠다. 전라남도 장성군에 가면 ‘청산녹수’라는 양조장이 있다. 생긴 지 1년된 신생양조장이다. 옛 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제법 안정된 설비를 갖췄다. 초등학교 2층과 1층에 양조설비를 갖추고, 냉장 저장시설과 연구시설도 있다. 그곳에서 나온 술이 사미인주다. 장성과 이웃한 담양 출신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술이 유리병에 담겨나온다. 술병 디자인은 독자 개발하였고, 한번 주문하면 10만병씩 받아와야 한다. 저장 공간이 따로 필요한 부담스런 양인데, 청산녹수는 다행히 창고로 쓸 공간이 있다. 막걸리 한 병 값은 소비자가격으로 3,800원에 팔리고 있다. 일반 막걸리의 3배나 된다. 원료는 유기농쌀을 양조장 인근 동네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 감미료를 넣지 않기 위해서 천연꿀을 넣어 단맛을 얼마간 낸다.
초기 발효 뒤에 5일 숙성시켜 술맛을 얌전하게 다스린다. 그래서 트림이 나지 않고, 과일즙을 풀어놓은 듯한 향긋함이 술 속에서 돈다. 양조장 대표는 대학에서 발효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라 과학을 기반으로 술을 빚고, 연구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학교 복도를 견학로로 만들어놓아,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제조과정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신뢰도 얻고, 술도 제법 많이 팔 법도 한데, 형편은 그렇지 않다.
발효실 |
발효되는 술 |
3,800원의 술값을 지불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지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3,800원이 술의 가치에 견주었을 때에 결코 비싸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막걸리가 싸다는 선입견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통로가 좁기 때문이다.
미각은 민족주의자처럼 익숙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준다. 새로운 맛은 외면하려든다. 소비자의 미각이 음식의 좋고 나쁨을 가려낸다면 좋으련만, 결코 그렇지 못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듯이, 달면 맛있다하고 쓰면 맛없다고 한다. 술은 본디 알코올 때문에 쓴맛이 주도하는 식품인데도 말이다.
값싼 막걸리를 내는 양조장에서는 막걸리 한병의 출고가격이 600원 안팎이다. 최대한 유통마진을 보장해주며 박리다매의 전략을 구사한다. 원가 절감하려면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고, 제조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킨다. 그런데 좋은 술은 좋은 원료로 빚어야 하고, 막걸리라 하더라도 발효 기간을 충분히 거쳐야 좋은 맛을 낸다.
좋은 막걸리를 찾는 손쉬운 방법 하나는, 와인도 그렇듯이 상대적으로 비싼 제품에 주목해보라. 그리고 그 차별성을 추적해보라. 분명 값싼 막걸리와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 막걸리를 즐길 줄 아는 소비자라면, 주점 주인이 내주는 막걸리만 마셔서는 곤란하다. 요즘은 택배로 배달되거나, 유기농 매장에서 파는 막걸리들도 생겨났다.
소비자들이 좋은 막걸리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생산자들이 다투어 더 좋은 농산물과 기술력으로 차별화된 막걸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막걸리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몫이 더 크다.
허시명은?
허시명은 대한민국 1호 술평론가이자, 술 기행가, 막걸리 감별사다.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품평회 심사위원, 국세청 주류질인증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