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희망’, 프로 2군의 찬란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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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4-03-25 08:20본문
국내 프로스포츠가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가 요즘 3월 하순이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봄 기지개를 켜고 시즌에 돌입하고,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포스트시즌으로 ‘봄잔치’를 펼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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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또 그 스타탄생의 배경에 주목한다. 그 스타가 그늘에서 꿈을 키운 스타라면 더욱 그렇다. 특히 2군 출신 선수들이 희망을 찾는 도전은 팬들 가슴에 더욱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남자 프로농구의 2군리그는 윈터리그다. 지난 2월 서울SK가 5명의 선수로 우승했다. 2008년 시작돼 참여팀이 줄어들더니 이번 시즌은 3개팀이 리그를 완주했다.
1년짜리 계약에 군복무 문제까지 겹쳐 1군 발탁의 길이 바늘구멍이지만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늘에서 땀을 쏟는다. 그 2군에서 햇살을 본 스타가 KT 김우람(26)이다.
지난 12일 시작된 프로농구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했다. 2011년 2군 드래프트에서 KCC에 지명됐지만 주로 2군리그에서 절치부심해야 했다.
윈터리그에서 그를 눈여겨본 전창진 감독이 잠재력을 인정해 트레이드를 통해 김우람을 KT로 불렀다. 그는 처음 맞은 포스트시즌에서 탁월한 수비력에다 고비마다 슛을 꽂아 넣으며 주전스타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 “우람아, 넌 할 수 있어. 넌 최고야”라고 중얼거리며 자기다짐을 해온 집념으로 프로농구에서 그렇게 힘들다는 2군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지난 13일 구리에서 벌어진 여자프로농구 퓨처스리그(2군리그) 결승.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KDB생명 김소담(21)이 극적인 버저비터 3점슛을 성공시키며 팀이 우리은행을 66-63으로 꺾고 우승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김소담은 MVP 트로피를 받은 뒤 채 두 시간도 안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1군 경기에 출전했다. 이날 총 69분을 뛰었다.
그래도 김소담의 얼굴을 밝았다. 지난 두 시즌 1군에서 14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던 그에게 지난해 12월 기회가 찾아들었다. 국내 최초 3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던 간판센터 신정자가 부상을 당해 대체선수로 1군에 뛰어들었다.
2군에서 갈고 닦은 기량이 빛을 발하며 ‘제2의 신정자’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입단했을 때 센터 자리에 언니가 7명이나 있었지만 2군에서 경기감각을 키웠다. 뛸 수 있으니까 행복하다”고 말했다.
퓨처스리그는 3년만에 부활했다. 본경기에 앞서 오프닝경기로 열렸고 3개팀으로 시즌을 마쳤다. 신선우 한국농구연맹 전무는 “신인 드래프트로 입단하지만 4~5년 뒤 남는 건 10명밖에 안되는 게 안타까웠다”며 “다들 다음 시즌엔 리그 기간을 더 늘리자고 할만큼 지지가 있다”고 경기력 향상과 스타발굴에서 2군리그의 성과가 좋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프로축구 K리그는 올해부터 2군리그가 열리지 않는다.
대우 하석주(전남 감독)가 2군리그 MVP를 차지한 1990년 한 해만 시행됐다가 2000년에야 부활됐다. 하지만 R리그로 운영되던 2군리그는 아시아축구연맹 ‘올해의 선수’ 이근호(상주)를 배출하는 등 2군신화를 만들어왔지만 시·도민구단의 재정난 등으로 12년만에 폐지됐다.
지난해 4개팀이 자체리그로 명맥을 이어보려고 했지만 한 해로 끝났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가 도입된 올해는 각팀마다 잔류군이 2군을 대체하고 있다.
남녀 프로배구는 여전히 2군리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도입은 논의중이다. 단, 삼성화재처럼 선수층이 두꺼운 팀에선 1,2군으로 나눠 훈련을 하고 있다.
2군이 가장 활성화된 종목은 1990년부터 2군리그를 시작한 프로야구. 지난 8일부터 보름간 시범경기로 예열을 끝내고 3월 29일 정규시즌이 개막된다.
올해는 2군들의 해외전지훈련 시대가 활짝 열렸다. 더이상 2군이 기량 떨어지는 선수들이 모여있는 집합소가 아니라 미래를 육성하는 요람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올해 롯데를 제외한 8개 구단이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2012년 삼성이 테이프를 끊은 2군 전지훈련이 확산돼 2군선수들의 자존감이 크게 향상됐다.
시범경기를 통해 9개팀은 스프링캠프에서 다듬었던 개개인의 기량을 점검해보고 2군,신인선수 등도 골고루 실전 경험을 통해 평가를 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2군 멤버들을 해외로 내보내 담금질을 한 뒤 창단 이후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려 2군 활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팀이 넥센이다. 2군에서 활약했던 박병호와 서건창이 2012년 각각 MVP와 신인왕을 수상하며 2군선수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던져준 터전도 넥센이었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깜짝 스타’로 떠오른 2군 선수가 주목받았다. 넥센의 강지광(24)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이 스프링캠프 때부터 콕 찍은 외야수. 지난 8일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1군 데뷔 첫 타석에서부터 데뷔 홈런을 날렸다. 그것도 지난 시즌 최고의 깜짝 스타였던 두산 유희관의 직구를 받아쳐 담장을 넘겨버렸다. 5일 뒤 SK전에선 좌우로 홈런을 기록했다. 박병호의 대를 이을 차세대 거포로 스타덤에 올랐다.
강지광은 인천고 재학시절 구속 150km를 뿌리던 투수 유망주였다. 당시 LG 스카우트였던 염 감독은 2009년 2차 3라운드로 그를 지명했다. 그러나 그는 팔꿈치 수술로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고 지난해 타자로 전향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치고 지난해 퓨처스리그 21경기에 출전, 2할3푼1리의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지난해 11월 ‘감독 염경엽’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타자 강지광’을 또 다시 지명해 넥센으로 데려왔다. 강지광은 그 믿음에 실력으로 보답했다. 오키나와 전훈 때부터 홈런포를 펑펑 쏘아올렸고 비거리는 박병호를 능가했다.
시범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상은 미국메이저리그 LA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를 연상케했다. 푸이그도 지난해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홈런 3개 포함, 5할의 타율로 맹타를 휘둘러 깜짝 스타로 주목받았다.
탄탄한 공수기량, 강한 어깨, 스피드, 장타력 등 ‘5툴 플레이어’로 닮은꼴이다. 우익수 포지션도, 나이도 같다. LG 시절 등번호 65번에서 한 단계 성장하자는 뜻으로 단 번호가 66번. 그 배번까지 푸이그와 같다.
염경엽 감독은 “강지광은 제2의 박재홍이 될 재목”라고 평했다. 세 차례나 30(홈런)-30(도루) 클럽을 달성한 박재홍(SK 2군 감독) 만큼 호타준족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염 감독은 이미 강지광에게 전반기까지는 2군에서 경험을 쌓을 것을 통보했다. 2군에서 천천히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외야진에 빈 곳이 생긴다면 그 때 강지광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단서는 있다. 강지광도 “급하지 않게 올해, 그리고 내년 시즌까지 멀리 내다보고 하겠다. 나중에는 한 시즌 30홈런 치는 타자가 되고 싶다. 2군 가서 착실히 경험을 쌓겠다”고 했다.
기다리며 키워내는 염 감독의 철학이 묻어난다. 어쩌면 그 기다림으로 ‘진짜 스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푸이그처럼 말이다.
지난해 푸이그가 시범경기의 맹활약으로 시즌이 시작되면 MLB로 직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돈 매팅리 감독의 선택은 마이너리그행이었다. 외야수 자원이 많기도 했지만 푸이그의 성장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푸이그는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았다. 6월 4일 MLB로 올라와 호타준족의 전형을 보여주며 ‘푸이그 돌풍’을 일으켰다. LA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도 이끌었다. 진짜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2군 선수들이 시범경기에서 반짝 빛을 보았다가 정작 시즌이 되면 사라지는 사례가 많았다. 코칭스태프의 조급한 기용, 선수들의 자만심 등 다양한 요인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처럼 확고한 기다림의 신념으로 미래를 키워나간다면 팬들로서도 기다려 줄 것이다. 그늘 속에 꿈을 키우는 2군 선수들에게 팬들의 애정어린 시선도 그만큼 더 쏠리지 않을까. 기다림 속에 ‘2군 진주’의 성장을 따라잡아보는 것도 의미가 퍽 깊을 것 같다.
프로야구 퓨처스리그는 4월 1일 개막한다. * 글 김한석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