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 > 사설칼럼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

정말 안타깝고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중2 남자아이가 집에 불을 질러 부모님, 동생, 할머니가 전부 사망하였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이유는 부모와 진로에 대해 의견충돌이 있어서였다고 하였다.

이런 행동이 사춘기 충동성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생각할게 많다. 우선 부모가 아들에게 거는 기대, 그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탄탄대로를 알고 있는 부모입장에서는 아들에게 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라면 그런 멋진 위치를 차지해야한다는 입장은 어찌보면 모든 부모의 로망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아이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아이가 불을 지르면서까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 아이가 살아온 14년 동안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한 가족은 있었을까? 사건의 전말이 아직 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아동학대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시작하여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구출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아이를 때리고 욕하고 무시하고, 내버려두는 등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라는 것이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사례중 83%가 넘는다. 그러므로 가정 내 학대발생 원인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을 통해 아동학대 근절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학대가 발생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아동학대 발생 원인을 어느 한 요인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부모의 개인적 특성과 함께 부모와 아동과의 상호작용을 분석할 필요가 있겠다.

첫째, 아동학대 발생 원인 중 하나로 부모가 아동기에 학대를 경험했을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학대피해아동의 1/3이 다시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로 성장하며,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즉, 부모 자신이 경험한 학대를 자신의 아이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둘째,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 중에는 알코올이나 약물남용자가 많다. 술을 끊임없이 마셔 정상적인 노동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들은 분노 및 감정 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화날 일도 아닌데 폭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투사하면서 ‘뚜껑이 열릴 때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줄 몰라요’ 등의 표현을 한다. 이런 행위자들은 감정조절의 어려움과 함께 반사회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특히 불안, 우울증, 기타 정신질환의 문제를 보이는 학대행위자들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학대행위자 대부분은 아동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돌보고 걱정하며 부모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누가 그 가족내에서 보호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덧붙여, 경제적인 어려움 또한 아동학대 발생요인이 되기도 한다. 학대발생가정의 국민기초수급권 비율을 보면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과 학대발생과는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정뿐만 아니라, 중산층 가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학대요인은 주로 자녀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감이 크다. ‘내 새끼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학대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부모와 자녀의 문제는 부모교육으로 예방할 수 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통해 아이의 심리적 특성,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 부모의 분노조절 및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주제로 부모들을 교육하고 인식을 변화시킨다면 학대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의 필요성이다. 이번사건도 지속적으로 학대가 일어났고 누군가는 아이의 힘든 심정을 알았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방관한 것이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라고 간과한 것이다. 가정 내에서 일어난 일은 타인의 신고 없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아동복지법은 누구든지 아동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법은 신고의무를 부여받은 자들도 명시하고 있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거나 아이와 그 가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교사, 학원, 보육교사, 유치원교사, 사회복지담당공무원 등이 바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다.

그런데 남의 가정을 신고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므로 신고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교육은 그 어떤 예방교육보다 중요하며, 신고의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학대예방홍보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전 국민의 아동학대 신고인식 증진을 위하여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11월 19일, 전 세계가 아동학대를 함께 예방하고자 기념하는 세계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이하여 전국적으로 아동학대예방 행사를 진행한다. UN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을 비준한 우리나라로선 꼭 기념해야 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어른 중심의 사고가 전환되고 적극적 아동학대예방활동으로 아동권리가 옹호되며, 그들의 최선의 이익이 먼저 고려되어 모든 아동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