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제다이, 이정재와 스타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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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시무(영화평론가, 미술심리상담사) 작성일 24-06-12 00:44 댓글 0본문
글과 사진: 김시무(영화평론가, 미술심리상담사)
지난 6월 5일, 스타워즈(Starwars)의 새 드라마 시리즈 <애콜라이트(The Acolyte)>가 디즈니플러스(Disney Plus)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었다. <애콜라이트>는 지금까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다루지 않았던 미지의 시대이자 '제다이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고 공화국(High Republic)’ 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새로운 인물을 캐스팅해 화제가 되었다. 처음으로 동양인 제다이가 등장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이정재가 제다이 마스터 ‘솔(Sol)’이라는 배역으로 출연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에도 동양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Rogue One: A Star Wars Story)>에서는 견자단(甄子丹, Donnie Yen)과 같은 홍콩 액션 배우가, 드라마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에서는 우리에게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 사장으로 익숙한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폴 선형 리(Paul Sun-Hyung Lee)가 출연했다. 드라마 <아소카(Ahsoka)>에서는 중국계 호주인 배우 나타샤 리우 보르디조(Natasha Liu Bordizzo)가 여성 주연으로 활약했다.
우리가 스타워즈에 출연한 많은 동양인 배우 중 특히 이정재에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영어가 제1국어가 아닌 배우라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작하는 ‘루카스 필름(Lucas Film)’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배우들을 섭외해왔다. 그들은 이민자로서 서구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하며, 인터뷰나 홍보 영상에서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반면에 이정재 배우는 통역사를 대동하여 한국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스타워즈 세계관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지만 영어를 ‘은하계 표준어(Galactic Basic)’라고 부르며 공용어로 사용한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용어가 있음에도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제작된 스타워즈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지널 삼부작(Original Trilogy)을 보면, 한 솔로(Han Solo)는 츄이(Chewbacca)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우키족의 언어를 배웠으며, 드로이드 쓰리피오(C-3PO)는 700만 종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외교 임무에서 통역을 맡기도 한다. 이렇듯, 스타워즈 세계관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포용하며 존중하는 다양성의 문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주로 백인 남성이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제다이(Jedi)의 스승과 제자 계보를 보면 두쿠 백작(Count Dooku) - 콰이곤 진(Qui-Gon Jinn) - 오비완 케노비(Obi-Wan Kenobi) – 아나킨 스카이워커(Anakin Skywalker)까지 모두 백인 남성이었다. 스타워즈하면 떠오르는 광선검(lightsaber)을 든 제다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동양풍 의상에 동양의 검술을 사용하고 있다. 제다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일본어에서 따온 것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비중 있는 동양인 제다이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정재 배우가 맡은 ‘솔(Sol)’이라는 캐릭터가 우리가 처음 보는 동양인 제다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정재 배우는 스타워즈 사가에 입성하게 된 소감에 대해, “악역으로 나오기 보다는, 선역을 맡아 동양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선함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표했다. 또한, ‘솔(Sol)’을 연기하기 위해 참고한 것이 있냐는 질문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인연이 있는 리암 니슨(Liam Neeson) 배우의 ‘콰이곤 진’ 캐릭터를 참고했다”고 답했다.
제다이는 엄격한 수련을 통해 자기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지만, 콰이곤 진은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Star Wars: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에서 정석적인 제다이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따스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5일 공개된 <애콜라이트> 1~2화에서 제다이 마스터 솔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메이(Mae)’를 맨손으로 제압할 정도로 단호하고 강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옛 제자였던 ‘오샤(Osha)’를 안타까워하는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솔의 모습에 스타워즈 팬들은 콰이곤 진 같은 제다이를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며 환호했다. 해외 팬들은 솔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태양을 뜻하는 ‘Sol’에서 따온 것으로 솔을 ‘태양’이라 부르고, 우리나라 팬들은 솔의 모습을 소나무 같다며 ‘솔쌤’, ‘솔버지(솔+아버지)’ 등으로 부르며 환영하고 있다.
<애콜라이트>의 앞으로의 전개는 제다이 마스터 솔과 쌍둥이 자매인 메이와 오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하다. <애콜라이트>의 솔과 메이오샤 자매의 관계는 스타워즈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클론전쟁(Clone Wars)>에서의 아나킨과 아소카(Ahsoka Tano) 사제관계와 닮아보인다. 아소카는 제다이 살해 의혹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치게 되지만 아소카의 스승인 아나킨은 제자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아나킨 아소카 사제관계는 깨지게 된다. <애콜라이트>에서 솔은 자신의 제자였던 오샤와 어둠에 물드려 하는 메이를 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정재 배우가 스타워즈 시리즈에 캐스팅된 것이 처음 알려졌을 때, 해외에서는 영어를 못 하는 배우가 영어 연기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애콜라이트>가 공개된 이후, 우려는 “이정재의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좋아서 솔이 한국어로 말하는 것도 들어보고 싶다”는 긍정적인 반응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애콜라이트>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제다이 마스터 솔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2015년부터 스타워즈 덕질을 시작했다는 스타워즈 팬인 김혜리 씨는 “스타워즈의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에서 ‘최초의 동양인 제다이’가 나오다니 감개가 무량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면서 이정재 배우가 스타워즈 시리즈에 출연한 것에 대해 감격을 표현했다.
이정재 배우가 출연한 스타워즈 드라마가 궁금하다면, 디즈니플러스에서 7월 17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한 편씩 공개되는 <애콜라이트>를 보기를 바란다.
스타워즈 세계관 안에서 상대방의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인 “May the Force be with you!”를 한국어로 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포스가 함께하길!”
<애콜라이트> 홍보영상 (디즈니플러스코리아 유튜브)
프로필
김시무 (金是戊)
1961년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 박사
저서
『스타 페르소나』 , 아모르문디 영화총서, 2018년.
『영국의 영화감독』,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년.
『봉준호를 읽다』. 솔출판사, 2020년.
사) 한국영화학회 회장 역임
부산대 아시아영화연구소 연구원
영화평론가
미술심리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