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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종이를 손수 만들어 보급했던 병조판서 김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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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8-08-2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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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한 교육부 관리가 청소년들에게 추천할만한 직업으로 경영컨설턴트, 회계사, 변호사, 에널리스트, 광고기획자, 인터넷정보검색사, 카피라이터, 외환딜러, 건축사, 변리사 등 을 거론하는 것을 보고 오늘 우리 나라가 어렵게 된 원인을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종 때 대사간, 공조판서, 예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대제학, 찬성, 등

을 지낸 김안국(1478~1543, 당대 최고의 권력자로 알려져 있는 김굉필 문하의 후배 조광조가 사간원의 정6품 정언으로 있을 때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을 지냈으며 현재 경기도 이천의 설봉서원에 배향되어져 있음)

선생님은 ‘왕도정치의 이상’이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고 누애 치는 지식,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학지식, 무역과 외교를 할 수 있는 통역 능력과 천문, 역법, 병법 등의 현실적인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TV 역사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당시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가들이 기생을 끼고 '지치주의'와 '왕도정치'를 이야기 할 때 김안국 선생님은 경상도와 전라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농서(農書)와 잠서(蠶書) 등을 백성들이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해 보급하였습니다.

또한 의학서 「벽온방」, 「창진방」 등을 간인하여 보급하였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한의학적 업적은 조선시대 사대부로서는 유일하게 대한한의사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의가 10인 중 한분으로 선정되어 있을 정도로 큰 것입니다.

1541년 병조판서로 있을 때에는 외세 침입에 대비해 천문, 역법, 병법과 관한 서적의 구입과 국력 신장을 건의하였습니다.

특히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백성들도 글을 사용해야 하며 문화의 대중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손수 물이끼와 닥을 화합하여 태지(苔紙)라는 값싸고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사용을 권장하였습니다.

지금 농촌에는 젊은 농부가 없다고 합니다. 공장에는 외국인 근로자만 가득하다고 합니다. 누가 오늘 우리의 농촌과 공장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빼앗아 갔습니까?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가장 비천하게 취급하던 향소부곡의 장인들이나 하던 종이 만드는 일을 손수한 판서(지금의 장관)가 있었습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태왕은 청년시절 마굿간쟁이였으며, 평강공주와 결혼한 온달장군과 백제 무왕(서동)은 마캐던 소년이었습니다. 또한 명재상 을파소는 농부였으며,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미천왕은 소금장수 출신이었습니다.

김안국 선생님은 "한집안의 번영은 자녀의 교육으로 보장되며, 빈부귀천과 재질을 따질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교육은 필수적이다.

 소질에 따라 무슨 직업이든 가르치면 한집안의 생계는 확보되며, 부유한 집과 벼슬 높은 집도 교육을 소홀히 하면 망한다. 금보다 책을 상속함이 낫고, 기름진 논밭보다 작은 재주가 낫다"고 했습니다.

특히 김안국 선생은 성격이 호방하여 중인 신분의 역관 최세진을 '동무'라 칭하며 가까이 하였으며, 1542년 중종 37년 최세진의 영전 앞에서는 7언율시의 만사(挽詞) '최동지세진만(崔同知世珍挽)'을 읊기도  하였습니다. 

「훈몽자회」의 저자 최세진은 지금은 국문학사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로 존경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1품 벼슬의 사대부와 중인신분인 역관과의 친교는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김안국 선생이 한번은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 이세정이 백면서생으로 있는 것이 안타까워 충청도의 청양군수로 천거한 뒤 후배들과 함께 당대 최고의 청백리로 알려진 관찰사(지금의 도시자)인 최숙생을 찾아갔습니다.

"김 판서(지금의 장관)님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최 공! 이번에 청양군수로 부임하신 이세정옹은 우리 선생님이십니다. 관직 경험이 없으셔서 걱정이 됩니다. 그렇지만 학문이 깊고 지조가 있는 분이시니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지는 말아 주시오."

" 예.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 또 최공이 고과성적을 매길 때 너무 낮게 매기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숙생은 김안국 선생의 일행에게 유쾌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1년 뒤 최숙생은 당대 최고의 청백리라는 명성답게 이세정에게 고과성적을 「중(中)」도 아닌 「하(下)」를 매겨 파직시켰습니다.

이에 화가 난 김안국 선생이 관찰사직을 마치고 돌아온 최숙생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최공! 충청도에는 탐관오리도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우리 선생님께 가장 낮은 점수를 주어 파직을 시킬 수 있나요? 내가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

"예. 충청도에는 탐관오리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교활하고 악랄하다 하더라도 도둑은 수령 하나 뿐이라 일반 서민들이 큰 고통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청양에 가보니 여섯 명의 큰 도둑에 작은 도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군청의 창고는 텅 비어 있고 백성들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동안 관찰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최숙생의 반론에 김안국 선생은 불쾌해 하지 않고, 오히려 최숙생을 관리(공무원)들을 감찰하는 사헌부(지금의 감사원)의 수장인 대사헌에 추천했다고 합니다.

대사헌이 된 최숙생은 사치와 부패로 해이해진 관리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다고 합니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은 김안국 선생이 살았으며, 선생의 존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김안국 선생의 이름 ‘안국(安國)’은 “‘위자안지(危者安之)’에서 따온 말로 위태로운 사람을 안녕케 한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거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국민이나 무리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자안지(危者安之)’의 정신은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태왕과 우리 겨레의 영웅 광개토태왕의 통치철학이었으며 삼한의 황조를 통합한 고려 태조 왕건태왕의 통치철학이기도 합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로군정서와 대한통의부 등을 이끈 석주 이상룡 선생님과 김동삼 선생님께서 계승한 사상과 철학적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김안국 선생님의 교훈을 다시 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청년시절 삽을 들고 기름때와 씨름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국가지도자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바로잡히지 않고, 국가와 우리 사회의 지도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 사회의 공기가 되어야 할 언론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을 바로 보고 있는 국민 개개인이 네트워크가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단지 한 사람의 생각은 이상일지 모르지만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생각을 모아 실천하면 현실이 됩니다.

우리 모두 나부터의 실천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의식혁명을 이룰 때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도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판용기자

김창호의 저서로는 2인시집 “너랑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내겐 천국이었어” (학영사)와 소설집 “광릉숲”(제3의 문학)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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