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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무용 미래 짊어진 공학도 출신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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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8-1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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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계에선 올해 큰 사건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출범한 것, 또 하나는 세계 최초로 현대무용만을 엄선해 인재를 가리는 ‘국제무용콩쿠르’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는 무용가 홍승엽(48)씨가 있다. 지난 달 그는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는 또한 ‘코리아 국제무용 콩쿠르’의 국내 심사위원(2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무용계에선 그의 예술감독 선임을 두고 ‘신선하고, 파격적인 일’이라 평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일찌감치 무용계의 타성을 벗어던진 안무가로 유명하다. 특히 2004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당시 공연을 보지도 않고 비디오로만 심사하는 심사위원이 많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던 일화는 그에게 ‘반골’이라는 수식어를 추가시켰다.

무용에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이력 또한 남다르다. 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경희대 섬유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82년 돌연 무용을 시작한다. 그 후 약 2년 만에 제 14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거머쥐었다. 현대무용수이지만 199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3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또 1993년에는 순수 민간 현대무용단으로는 최초였던 ‘댄스시어터 온’을 창단하기도 했다.

‘파격’이라는 말이 제법 잘 들어맞는다. 지난 10일,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서울 홍지동 상명아트센터에선 ‘코리아 국제무용 콩쿠르’가 한창이었다. 국내 심사위원으로 활동중인 그에게선 이내 한국 무용계에 대한 자부심 담긴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 현대무용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한국무용수에게 상이 쏠리는 것을 오히려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 초대 예술 감독으로 선임되셨는데?

큰일 났죠(웃음). 우리나라 현대무용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 생각을 실전에서 풀어내야만 하는 위치가 된 거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 그 무게가 다르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어요. 비유를 하자면 이제껏 해왔던 어떤 작품보다도 큰 작품이 내 앞에 하나 뚝 떨어진 기분이랄까. 요즘 같아선 머릿속에 채널이 한 10개 정도는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 국립현대무용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란 게 구체적으로 뭔가요?

국립현대무용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확실히 정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면 젊은 안무가 육성, 지역별 문화 격차 해소, 활발한 해외 진출이죠.

그 중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안무가 육성이에요. 안무가를 지속적으로 육성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국제적인 수준에도 부합해가야 해요. 제가 그 토양을 닦아야 하는 첫 번째 주자인 셈이죠.

둘째는 서울과 지방의 순수예술 격차를 줄여나가는 일이에요. 사람들에게 순수예술을 최대한 많이 접하도록 해서 ‘야, 저런 예술단체가 우리에게도 필요하겠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이건 장기적으로 양질의 예술작품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해외시장 개척이에요. 후배들 작품들을 보면서 ‘저 정도 작품이면 국제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 싶은 작품을 종종 봐요. 그런데 무용을 좀 안다는 사람들조차 후한 평가를 내리는 데에는 인색하죠. 분별능력이 없다는 건 그만큼 비교대상을 많이 접해보지 못 했기 때문인데, 해외 시장에서 우리 작품이 하나둘 인정받기 시작하면 아마 우리 문화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끼게 될 거에요.

- ‘반골’,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맡다보니 ‘그런 공직은 거부하고 작품만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죠. 하지만 주제넘게 자꾸 후배들 걱정이 되요. 무용계가 일반 시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야 무용계가 선순환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부딪칠 줄 아는 젊은 안무가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거칠 수 있게 해줘야 되요. 마침 제게 이런 자리가 주어졌으니 여기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공대 출신 무용가로서 살아온 이력도 독특하신데?

아주 어릴 적엔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미술에 관심이 많았죠. 당시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하고 싶긴 하지만 감히 할 수 없는 것들’이었죠. 그러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 1년쯤 생활하다보니 과연 지금 공부한 걸 가지고 평생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봤어요. 그 때 ‘춤’이 보이더라고요. 그 확신이 서기까지 7개월이 걸렸죠. 그동안 식음을 전폐해서 몸무게가 50kg까지 빠졌을 정도였죠. 내 인생을 걸 만한 어떤 것을 선택하기까지 그렇듯 치열하게 고민한 시간이 지금은 전혀 아깝지 않아요.

- 상주단원 없이 무용단을 이끌 계획이라고 들었는데요?

상당히 실험적인 방식이죠. 우려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로서는 긍정적이고 해볼 만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상주단원을 두지 않겠다는 건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계속해서 무용가를 충원하겠다는 얘기죠. 하나 끝나고 하나를 시작하는 식의 나열식 진행이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겁니다. 그만큼 무용수들에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거죠. 이런 방식이 무용가들에겐 계속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창조해나가는 동력이 될 겁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일단은 주변과 ‘소통’하는 데 최대한 힘을 쏟을 생각이에요. 현대무용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양보할 수 있는 부분과 양보해선 안 될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주위 분들이나 관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득해나갈 생각이에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란 건 현대무용의 태생 자체가 지닌 자율성과 창의성을 말하는 건데요. 창의성은 기존의 룰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발현되기 시작하죠. 이런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하도록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거라고 봐요. 그건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무용이 예술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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