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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유년 시절을 찾아서: 박재동 화백의 ‘이것저것’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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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3-12-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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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시무 박사(영화평론가, 미술심리상담사) 논설위원
 

‘박재동의 이것저것 전’이라는 다소 가벼운 제하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뜻밖이었다. 

박재동 화백은 정치 풍자 시사 만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가 틈틈이 그린 정치 풍자 삽화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본 그림들은 따로 있었다. 아니 눈길이 저절로 이끌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 화백이 초등학교 시절에 그린 그림들이었다. 

유명한 화가들의 회고전에 가면 그 화가가 미술학도였을 때 그린 습작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그린 그림이라니? 초등학교 2학년 때라니까 아홉 살 정도에 그렸을 그림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그 그림의 수준이 아동의 일반적 그것을 훨씬 넘어서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박재동 화백이 1952년생이니 1961년에 그린 그림일 터였다. 

박 화백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린 <꽃병>이란 제목의 정물화는 (미술) 교과서에 나온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었다. 만약 그런 부연 설명이 없었다면, 어느 대가의 습작품쯤으로 여겨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의 데생 실력과 채색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 화백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파스텔로 그린 <우리 학교>를 보자. 다소 낡아 보이는 석조 건물의 외벽에 비친 햇살을 묘사하고 있는 듯한데, 마치 건물 설계도처럼 정확한 원근법과 직선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어렸을 때 당시 유행하던 스티커 판박이 등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들을 모사하면서 인물들을 연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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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린 시절, 세상은 이미 화폭이었다. 세상은 물감이었고 붓만 들면 이내 내 것이었다. 그런 기세로 살아가는 평생이 우리를 늙지 않게 한다. (...) 유년은 평생의 감격이다.” 

박재동 화백은 지금도 여전히 유년 시절처럼 이곳저곳 골목길을 쏘다니고 있다. 그리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만나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박 화백은 그의 손바닥 그림들을 통하여 그것을 보는 우리 모두를 늙지 않게 해주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아이와 대화하며 그 아이를 그린 그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림값으로 600원을 받았다. 

작품이 손바닥만 하면 족하다. 그래서 나는 ‘손바닥 그림 운동’을 한다. 

나는 길을 가다가 광고지도 모으고 지하철에 붙어 있는 작은 광고전단도 모은다. 

시위 때 쓰이는 전단지들도 물론 모은다.

모아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귀중해지고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그런 까닭에 이번 전시회의 제목도 이것저것 전’이라고 붙였다. 

‘박재동의 이것저것’ 맘에 든다.” (작가 노트 중에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미술 분야도 대작(大作)이 우대받는다. 우선 규모가 커야 대접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작고 초라하게 여겨지면 버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박재동 화백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규모가 작고 초라한 것, 손바닥 만 한 세상에 담는 거리의 아트, 평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그의 예술론의 요체(要諦)이자 민중에 대한 복무(服務)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그의 손바닥 아트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박재동 화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 개념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예술인 듯한 것’을 싫어한다. 

‘예술이어야 할 것 같은 것’도 싫어한다.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도 싫어한다. 

‘예술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나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명작을 언젠가는 해야지 하는 포부와 질투심과 야심 또한 건재하다.” (작가 노트 중에서) 

이처럼 박재동 화백은 화가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걸작의 창작’을 꿈꾸어 왔다. 이를 위해서 그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갈고닦는 작업을 해왔다. 그가 고교 3학년 때 그린 유화인 <창근이 집 정원>은 아스라한 녹색 톤으로 화분에 담긴 식물과 바위에 비친 햇살을 묘사하고 있는데, 세잔느의 <생트빅투아르 산>을 연상시키는 부피감과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걸작의 싹이 아닐 수 없다. 박 화백이 그린 청년기의 자화상도 그런 의지의 산물이리라. 

박 화백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왔다. 그가 그린 일련의 누드 크로키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그린 듯 칙칙 그은 사선과 곡선에 살짝 분홍색만 찍어도 금세 여인의 나신(裸身)이 생명력을 얻는다. 

“사실 누드 습작 없는 인물화가 가당키나 할까. 그럼에도 이미 알려진 작가의 누드 크로키 그리기는 머뭇거려진다. 기이한 윤리적 제동(制動) 탓이다.” (작가 노트 중에서)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박재동 화백의 누드 크로키는 단순한 습작 차원이 아니라 경직된 시대의 통제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우회로였음을 알게 된다. 

 


프로필


김시무 (金是戊)

1961년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 박사


저서

『스타 페르소나』 , 아모르문디 영화총서, 2018년.

『영국의 영화감독』,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년.

『봉준호를 읽다』. 솔출판사, 2020년.


사) 한국영화학회 회장 역임

부산대 아시아영화연구소 연구원

영화평론가

미술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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