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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사드와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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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5-03-3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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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끝나자 명나라는 조선에 대한 무리한 원조로 국력이 쇠약해졌다. 이 틈을 타 만주의 누르하치는 분열된 여진족을 통합해 후금을 건국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직접 지휘했던 군주였기에 명과 청 사이에서 현명한 중립외교를 선택했다.

 

 후금이 명을 공격하자 명나라는 조선에게 병력지원을 요청했다. 광해군은 명에 군대를 파견하는 대신, 총사령관 강홍립에게 후금에 대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지시했다. 광해군의 현명한 지시 덕분에 조선군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문제는 서인세력이었다. 광해군이 북인의 지지로 집권한 탓에 수세에 몰리던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이 못마땅했다. 마침 광해군이 서인의 지지를 받던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자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축출하고 인조를 새로운 군주로 내세웠다.

 

서인의 집권은 역사의 비극을 초래했다. 서인은 명과의 의리를 강조하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친명배금 정책을 천명했다. 후금은 조선을 손보기로 작정하고 군대를 일으켰다. 결국 ‘정묘호란’이 터졌다. 후금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했고, 놀란 조선 정부는 황급히 후금에게 화의 맺기를 요청해 양국의 화의가 체결됐다.

 

하지만 후금이 무리하게 군신 관계를 강요하자 조선 정부는 내분이 발생했다. 이른바 ‘주전론’과 ‘주화론’의 대립이다. 먼저 주화론이다. 주화론의 거두 최명길은 <지천집>을 통해 “화친을 맺어 국가를 보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를 지켜 망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신하가 절개를 지키는 데 쓰는 말입니다. (중략)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경망하게 큰소리를 쳐서 오랑캐들의 노여움을 도발,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 허물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라고 주장한다.

 

서인 강경파는 주전론을 내세운다. <인조실록>의 기록이다. “화의로 백성과 나라를 망치기가(중략) 오늘날과 같이 심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명)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요, 오랑캐(청)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의 원수입니다. 신하된 자로서 부모의 원수와 형제가 되어서 부모를 저버리겠습니까.(중략) 차라리 나라가 없어질지라도 의리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결국 인조는 주전론에 밀려 청과의 군신요구를 거절했다. 병자호란이 터졌다. 청의 정예군이 압록강을 넘었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고, 수십 만 명의 백성들이 인질이 되어 머나먼 만주 땅으로 끌려갔다. 병자호란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애써 눈을 감은 정부의 무능 탓이었다. 하지만 애꿎은 백성들의 희생만 엄청났다.

 

최근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우리 정부도 각 부처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부처와 외교부는 반대를, 국방부는 찬성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관계자들은 400여 년 전 조상들이 대의명분을 내세우다 애꿎은 백성들의 희생만 강요했던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 망국의 비극은 되풀이 될 수 없다. 윤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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