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식 隨想] 커피와 음악다방 그리고 DJ, ‘기억 속의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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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광식 기자 작성일 23-11-21 16:48본문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요즘 왠지 마음이 움츠러들고 우울해지는 것이 나만의 느낌일까(?).. 내 나이 이제 60대 중반, 또래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다. 그것은 그 옛날 80년대 음악다방의 낭만이었다.
수 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추억을 생각해 본다.
기록을 보면, 아주 아주 옛날 고종황제가 명성황후 시해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러시아 공관에 피신해 있을 때, 당시 고종의 시중을 들던 독일계 여성 '손탁'이 중구 정동 소재 왕실 소유의 땅 184평을 하사 받아 호텔을 세우고 이 곳에 1902년 '정동구락부'를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판 다방이 여기 있었다고 한다.
커피 소비는 60~70년대에 들어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었다. 그 와중에 음악다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50년대 말 명동에 위치한 음악다방 ‘은하수’, ‘명보다방’, ‘돌체’ 등은 젊은이들을 위한 자리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디쉐네’, ‘메트로’, ‘시보네’ 등도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최동욱, 이종환, 김인권, 박광희, 원종관, 조용호, 이백천, 이선권, 박원웅 등이 DJ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후일 방송사가 생기면서 각각 프로듀서나 방송 DJ로 자리를 옮겼다. 그만큼 그들의 인기가 대단했었다. 어쨌든 이런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커피는 젊은이들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특히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LP판, 장발, 미니스커트, 고고, 디스코, 팝송과 더불어 커피는 더 더욱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70~80년대 음악다방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1970년대 초 커피 값은 60원이었다고 한다. 아마 자장면 가격도 이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 곳 없고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대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다. 장발이 유행하던 그 시절, 뒷주머니에 도끼 빗을 넣고 다니며 거울 앞에서 한층 뽐내며 머리를 빗는 DJ의 모습 또한 익숙한 풍경이었다.
DJ의 어원은 Disk(음반)와 Jockey(말을 타는 기수)의 약자로 말(馬)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수처럼 Disk(음반)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80년대 DJ는 뮤직박스 안에서 날씨와 계절, 분위기에 맞는 선곡을 하고 음악적인 주제와 화제의 멘트를 하는데, 주로 고객의 신청곡과 사연들을 위주로 방송을 했다.
가난한 연인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만의 사연이 담긴 음악을 듣는다든지., 군대 영장을 받은 젊은이들은 ‘꺼이꺼이’ 쓰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혹은 실연한 여대생들이 마냥 눈물을 훔치며 음악을 신청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당시 음악다방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휴식처였다. 일상의 피로에 지치고,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 또 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DJ는 신청곡과 사연을 전하며, 힘과 용기 그리고 위안을 준 아름다운 메신저였다.
하지만 이렇게 전국 각 도시의 대학가와 중심가에 유행처럼 번진 음악다방도 사회가 바뀌면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그 시기를 86년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개최 이후로 본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컬러 TV방송이 시작되고, 프로 스포츠의 열기가 확산되던 바로 그 시기였다. 각 가정의 오디오ㆍTV 보급과 노래방ㆍ게임방 등 다양한 여가문화의 출현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무엇보다 당시 개방된 사회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의 관심과 시선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각계의 젊은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대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K-POP 유행 세대의 등장이다. 이들은 더 이상 낭만을 찾으며 음악다방을 찾지 않는다. 그 대신 전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신명나게 널리 알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상도 상전벽해로 많이 좋아졌다.
요즘은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세상이다. 그래서 호강이라면 호강이랄까.. 어느 날 나는 하얀 백발을 하고, 가끔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옛날 커피와 음악다방의 낭만은 이제 ‘기억 속의 추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