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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사랑 있는 배움터에서 꿈 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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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11-0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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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 빈민들의 삶의 터전인 경기 성남시 구시가지의 한 달동네에 특이한 공부방이 있다. ‘꼴찌없는 글방’이다. 참가자들과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운영하는 이곳은 나눔의 정신이 살아 있는 사랑의 배움터다.

정부보조금이나 후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자립한 공부방을 만들기 위해 염오봉 대표는
정부보조금이나 후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자립한 공부방을 만들기 위해 염오봉 대표는 '중고책 판매'라는 수익사업을 시작했다.
‘꼴찌없는 글방’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 ‘꼴찌에게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사회’를 꿈꾸며 2008년 5월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 인근에서 작은 야학 동아리로 시작했다. 이후 1년여의 기간을 통해 학생 수가 1백여 명으로 늘어나고 경기도청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돼 정부보조금도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기존 공부방과는 다른 차별화된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식이 수업료나 간식비, 교재비를 받지 않는 무료 공부방이라는 점과 참가자들의 기부로 운영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염오봉(46·안양대 행정학과 겸임교수) 대표의 설명이다.

물론 ‘무료’라는 원칙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부보조금과 후원자들의 온정에 기대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글방 운영이 의존적으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학생들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한다면 ‘무료 공부방’이라는 취지에서 멀어지게 된다.

금액이 적더라도 그것에 부담을 느껴 찾아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겠기에 ‘무료’라는 원칙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중고책 판매’를 통한 글방의 재정 자립화였다.

중고책 판매는 ‘책의 재활용, 지식의 리사이클링’이라는 슬로건 아래 이뤄진다. 판매하는 책의 대부분은 기증받은 것으로, 비록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중고책의 판매 수익금으로 글방이 운영된다.

기증받은 책은 학생들의 학습 교재로 쓰이거나 도서관 도서처럼 이용되기도 하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글방 운영방식에 공감한 농협에서 성남 하나로마트에 공간을 내줘 마트 안에서 중고책을 판매했다. 열흘이라는 한정된 기간이었지만 수익도 올릴 수 있었고 일반인들에게 글방도 알릴 수 있었다. 염 대표는 “글방 활동과 책의 리사이클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기증받은 중고책 판매 수익금으로 글방 운영

‘꼴찌없는 글방’의 후원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한다. 일단 판매를 위한 중고책은 전부 기증받은 것들이다. 기증받은 책이 많아지면서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후원자로부터 본인 소유 창고에 중고책을 보관할 수 있도록 공간도 기부받았다.

성남시에서 중고책방을 운영하는 후원자는 중고책 판매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자신의 책방에 있는 판매용 중고책을 기증했다. 인근 슈퍼마켓 주인은 글방에만 특별 할인을 적용해주고 빵집 주인은 아이들 간식으로 빵을 기증하는 등 동네 주민들도 훈훈한 인심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나눔의 마음이 있다면 물질적 기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글방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바로 재능기부를 통해서다. 재능기부는 말 그대로 물질이 아닌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을 소외계층을 위해 쓰는 것을 의미한다.

염 대표는 공무원 경험을 살려‘꼴찌없는 글방’의 운영에 힘쓰고 있다.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이정애 원장은 교육 프로그램 기획과 수학 강의를 맡고 있으며, 법무법인 새길의 이현용 변호사는 글방 운영에 관한 법적 자문 역할은 물론 현장학습 가이드도 자청해 아이들에게 인기 강사로 통한다. 세무법인 새길에서는 글방의 세무관리를 해주고 있다.

일주일에 2시간씩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들, 휴일을 이용해 글방을 청소하러 오는 학부모들, 휴일이나 방학이 되면 봉사활동을 자청하는 아이들…. 글방을 찾는 모든 식구들이 저마다 재능을 기부하면서 어느새 나눔은 습관이 됐다.

배움의 때를 놓친 성인들이 글방을 찾아 못다 한 공부의 한을 풀고 재출발의 기회를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2월 KBS 1TV <현장르포 동행>에 사연이 소개된 박남수(55)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2005년의 화물차 화재폭발 사고로 당시 동승했던 아들 형중(10·초교 3년) 군과 함께 얼굴과 손을 비롯한 전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 사고로 조막손이 된 그는 폐지 수집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중 ‘꼴찌없는 글방’을 만나면서 부자가 나란히 ‘공부방 동창’이 됐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박 씨는 ‘꼴찌없는 글방’을 만나 평생의 숙원이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한글 공부부터 시작한 그는 선생님들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온 꿈을 이야기했다. 고졸 검정고시 합격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꿈이다.

염 대표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얘기에 모두 말렸지만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자 생각지도 못했던 집중력과 이해력을 보여줬다. 이대로 계속 공부한다면 자격증 취득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글방을 다니는 아버지는 또 있다. 경기 광주시의 한 공장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하는 김영철(가명·47) 씨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딸을 통해 글방을 다니게 됐다. 직장에서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증 취득이 필요한데 학력이 낮은 그로선 영어로 된 전문용어나 원리에 대한 내용을 공부한다는 게 무리였다.

후원자들 재능기부로 글방 활동에 참여

이런 그를 위해 글방 선생님들의 특강이 시작됐다. “영어, 수학, 과학을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는 김 씨를 위해 과목별 지도는 물론이고, 잦은 야근으로 등교시간이 불규칙한데도 늦은 밤까지 글방에서 대기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꼴찌없는 글방’은 나이와 학력에 관계없이 배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다.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지식과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교실이다.

염 대표는 “교육의 격차로 가난을 대물림하고 현실 앞에서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 글방의 바람이다. 나눔과 믿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배움터를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을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유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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