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물길 따라 걸으며 평화의 날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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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1-01-03 12:41 댓글 0본문
강원 철원 땅에는 한탄강이 흐른다. 북녘의 평강 황성산에서 발원해 철원군과 포천시 등을 거쳐 경기 연천군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강이다. 길이 1백36킬로미터, 평균 강폭 60미터의 한탄강은 평강과 철원 지방을 중심으로 방대하게 펼쳐진 용암대지 위를 흐르면서 직탕폭포, 고석정, 순담계곡 등의 경승지를 빚어놓았다.
민통선 내 철원평야에서 만난 고라니. |
예부터 큰여울, 한여울, 섬내, 대탄(大灘) 등으로도 불려온 한탄강(漢灘江)은 광복 이후 ‘한탄강’(恨嘆江)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광복 직후 38선이 그어지자 이 강은 그대로 남북을 분단하는 경계선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6·25전쟁 당시에는 남북 간의 치열한 교전이 곳곳에서 벌어져 온 강물이 핏빛으로 물들기도 했다.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는 철원군에는 최근 한탄강을 따라가는 걷기 코스가 개발됐다. 한여울길이 그것이다. 한탄강의 절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이 길은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문화생태 탐방로 중 하나인 ‘쇠둘레 평화누리길’의 1코스에 속한다. ‘쇠둘레’는 철원(鐵原, 또는 鐵圓)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2코스인 ‘금강산 가는 길’은 1931년에 개통된 옛 금강산전철의 일부 구간을 통과해서 붙은 이름이다. 옛 경원선 철도의 주요 경유지였던 철원은 전체 길이 1백16.6킬로미터의 금강산전철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자연 풍광보다는 옛 이야기를 더듬는 길이다.
현재 한여울길은 승일교에서 직탕폭포까지 4.8킬로미터 구간만 정비돼 있다. 1코스의 나머지 구간과 2코스의 전체 구간은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상태로도 걷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길이 평탄해서 사람을 숨 가쁘게 하거나 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구간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이정표 설치와 코스 정비작업이 완료되는 내년 2월부터나 초행인 사람들도 길을 헛갈리지 않고 1, 2코스 전체를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꺽정 전설이 살아 있는 고석정
한여울길은 승일교 옆 승일공원에서 시작된다. 콘크리트 다리인 승일교의 이름은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 가운데에서 한 자씩 따서 지었다고 한다. 철원은 광복이 된 후로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 땅에 속했다. 그때 다리 건설공사가 시작됐고 철원이 남한 땅에 속하게 된 6·25전쟁 이후에 완공됐다.
한편으로는 전쟁 당시 큰 전공을 세웠다는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에서 승일교(勝日橋)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오늘날 승일교는 사람의 통행만 가능하고, 차량은 바로 옆에 새로 가설된 한탄대교를 이용한다.
한탄강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고석정의 설경. |
승일교를 건너 철원읍 방면으로 1킬로미터쯤 가면 한탄강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고석정 입구에 당도한다. 원래 고석정은 한탄강변의 작은 정자지만, 오늘날에는 그 일대의 빼어난 풍광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고석정 일대의 절경을 두고 고려 때 무외(無畏)라는 스님은 이런 글을 남겼다.
“철원군 남쪽 만보쯤 되는 거리에 큰 바위(고석바위)가 우뚝 솟은 고석정이 있는데, 높이는 거의 3백 척이나 되고 둘레는 십여 길이나 된다.… 또 큰 여울이 굽이쳐 흐르며 벼랑에 부딪치고 돌 굴리는 소리가 여러 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과 같다. 고석바위 아래에는 깊이 팬 못(淵)이 있어 내려다보면 다리가 절로 떨리고 그 속에는 신물(神物)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풍광이 맑고 서늘하고 기이하여 비록 문장이 뛰어나거나 그림 솜씨가 빼어난 자라도 표현하기가 난망할 것이다….”
등록문화재 제22호인 옛 노동당사 건물. |
고석정 입구를 지나온 한여울길은 드넓은 철원평야를 가로지른다. 오른쪽으로는 움푹 꺼진 한탄강을 굽어보며 걷는다. 철원평야 한복판을 흐르는 한탄강의 물길은 지면과 엇비슷한 높이로 흐르는 여느 강들과는 달리 움푹 꺼져 들어가 있다. 30~40미터 깊이로 깎인 한탄강의 협곡은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여울목과 소(沼)가 많아서 물살도 매우 빠른 편이다. 그래서 직탕폭포와 군탄교 사이의 한탄강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과 휴일이면 수많은 래프팅 보트들이 줄지어 내려가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직탕폭포의 겨울 풍경. |
한탄강의 양안(兩岸) 절벽에는 주상절리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고석정과 직탕폭포 사이에 위치한 송대소는 6각형의 현무암 돌기둥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진풍경을 보여준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별명이 붙은 직탕폭포 주변에도 주상절리대가 발달해 있다. 하지만 높이 3미터, 폭 80미터 규모의 폭포 전체가 거대한 얼음폭포로 변하는 겨울철에는 주상절리대를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직탕폭포 주변 빼어난 주상절리대 발달
철원까지 와서 1코스의 일부분만 걷고 돌아가기 아쉽다면, 도피안사(倒彼岸寺)나 노동당사 같은 2코스의 몇몇 경유지를 미리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관음동 마을에 위치한 도피안사는 신라 때 창건됐다는 고찰이다. 6·25전쟁 당시 큰 피해를 본 데다 한동안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안쪽에 있어서 긴 내력에 비해 규모는 소박한 편이다. 덕분에 산사다운 고즈넉함이 오롯이 살아 있다.
민통선 내 철원평야에서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 두루미 한 쌍. |
이곳의 대적광전에는 철조비로자나불상(국보 제63호)이 봉안돼 있다. 불상의 등에 새겨진 조성기(造成記)에 따르면, 865년에 철원 지방의 신도 1천5백명의 발원으로 조성된 철불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금불사를 해놓은 바람에 철불 특유의 질감과 색감은 느껴보기 어렵다. 게다가 깡마른 몸매,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눈빛 등은 부처라기보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더 닮았다.
도피안사에서 약 3킬로미터쯤 떨어진 철원읍 관전리 87번 국도변에는 옛 노동당사 건물 잔해가 덩그러니 서 있다. 광복 직후부터 6·25전쟁 때까지 조선노동당의 철원 군당(郡黨)이 자리했던 러시아식 건물이다. 건립 당시 조선노동당은 1개 리(里)당 쌀 2백 가마씩을 성금으로 거뒀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건물 내벽은 거의 다 무너져 내렸고, 6·25전쟁 당시 쏟아진 포탄과 총탄 자국으로 성한 데가 별로 없다. 게다가 외벽마저 칙칙해서 흉가처럼 스산한 느낌을 준다.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이 잔해를 보노라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분단의 아픔이 새삼 가슴을 무겁게 억누른다.
출처 글·사진: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