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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맡았던 그 보리냄새…고창 청보리밭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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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1-05-1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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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우와, 정말 푸르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랜만에 눈이 다 호강하네.”

“엄마, 어릴 때 맡았던 그 보리냄새네요. 우리 옛날에 시골 살던 생각난다.”

서울에서 봄나들이에 나선 이진희(40)씨 가족이 청보리밭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100ha에 달하는 드넓은 보리밭이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확 트이게 만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듯했다.

‘제8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 일대에서 열렸다. ‘보리사랑, 건강한 삶’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축제는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16일간 이어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전북 고창에서 열린 제8회 청보리밭축제 현장.

고창청보리밭축제는 실제로 보리를 단순한 식량생산의 기능이 아닌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전국 최초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고창청보리밭축제위원회 진영호 위원장은 “청보리밭은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더 예쁘다.”며 “전문 사진작가들이 전시회 때마다 청보리밭 사진을 전시하다보니 자연스레 입소문이 퍼져 일부러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객이 늘어나다보니 교통경찰들이 나와 수습할 정도로 일이 커졌고, 관광객들의 요청에 따라 2004년부터 축제를 시작하게 됐다.”며 축제의 연유를 설명했다.

진 위원장은 이어 “청보리밭 축제는 특별한 놀이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먹을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은 것이 특징”이라며 “5,000만 원의 적은 예산이지만 매년 6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 2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리밭 사잇길을 걷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바람이 일면 눈인사를 하는 듯 보리가 고개를 숙이며 바람에 살랑이고 있다.

특히 이번 축제는 그동안 경관만 보여주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바쁜 일상에 지쳐있는 현대인에게 ‘녹색 쉼터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공간적 의미의 축제로 그 외연을 넓혔다.

이에 따라 이번 축제 기간 중에는 청보리밭이 밀집돼 있는 고창 학원농장일대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릉 경관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대거 선보였다.

실제로 2㎞의 ‘보리밭 사잇길 걷기’ ▲보리를 이용한 토피어리 정원 ▲관광객이 직접 연출하는 소원 바람개비 체험 존 ▲보리개떡·보리쿠키·보리강정 만들기 체험 ▲천연염색·나무공예 체험 등 전에 없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방문객을 맞았다.

이 가운데 자녀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스템프 코너가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청보리밭 주변의 잉어못, 호랑이왕대밭, 백민기념관, 도깨비 숲 등 총 2km의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스템프를 받아 돌아오면 보리된장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인 ‘보리밭 사잇길 2km’를 관광객들과 함께 걸어봤다. 청보리밭에 들어서자 봄 냄새가 가득한 풀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향긋한 냄새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한차례 불자 보리들이 관광객들을 반기는 듯 바람결에 따라 머리를 숙이듯 인사했다.

“엄마, 보리가 나한테 인사했어요.” “엄마도 봤어요?”
“요것 보게, 늙은 나한테까지 눈인사를 하네.” (하하)

바람이 불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왔다. 이어 보리 가지를 잘라 만든 피리를 입으로 부는 ‘삐삑~’하는 보리피리소리도 들려왔다.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소리를 듣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보였다.

100ha가 넘는 드넓은 평지의 자연 그대로의 보리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보리피리를 부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 동심으로 돌아간듯 어른과 어린이 모두 보리피리를 체험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사람들의 입을 통해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노랫말도 들렸다. 사람들은 그 유명한 가곡이 이곳에서 탄생한 거 아니냐며 노래 한 소절씩을 따라불렀다. 멋진 풍경이 담긴 보리밭을 기억하려는 듯 카메라 플래시 세례도 연이어 터져나왔다.

“엄마, 누가 더 잘 나왔어요?”
“아들, 이것 봐. 우리, 아들딸들 모두 잘나왔네. 여긴 찍기만 해도 무조건 화보야.”

아이들에겐 보리밭은 마냥 신나는 놀이터였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온 이리나(8)양은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엄마, 보리 진짜예요?” “어떻게 이렇게 색깔이 선명하고 고와요?” “그러면 이게 다 자라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라며 연신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푸른 보리밭을 배경으로 가족들의 즐거운 대화도 오고갔다.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 사이에서는 “우리 웨딩촬영 여기서 하면 정말 환상이겠다.”며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도 많았다.

인천에서 온 양미정(46)씨는 “직장 생활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었는데,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아이들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오게 됐다.”며 “이곳에 오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며 이내 미소를 띠었다.

서울에서 온 박광자(69)씨에게 푸른 보리밭은 아픈 보릿고개의 추억으로 다가왔다. 박 씨는 “겨울 나면서 쌀이며 먹을 게 다 떨어졌는데 보리는 아직 여물지도 않았지요. 겨우 풀뿌리와 나무껍질, 보리 잎과 함께 죽과 떡을 만들어 허기를 지냈던 게 생각이 나네요. 보리밭을 거닐며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잠시 눈시울울 붉히기도 했다.

보리밭 사잇길 건너편에는 말이 직접 끄는 마차를 이용하는 유료코너도 있었다. 100ha가 넘는 드넓은 푸른초원을 앞에 두고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걸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창청보리밭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바람개비 곡선을 따라 걷고 있다.

진 위원장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로 지친 도시민들이 청보리밭의 초록빛을 보며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것 같다.”며 “ 청보리밭을 보며 보리피리를 불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등 좋았던 기억을 주위 사람과 공유하다보니 입소문을 통해 관광객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창청보리축제는 8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곳에선 4계절 내내 축제가 펼쳐진다. 봄에는 청보리 축제,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가을에는 메밀축제, 겨울에는 눈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이처럼 대자연을 그대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고창지역 축제의 특징이다.

몸과 마음의 아픈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계절의 기운을 만끽하고 싶다면 고창의 사계절 축제 현장으로 달려가보는 건 어떨까. 대자연이 주는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책기자 박기태(고등학생) sosrncnf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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