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쉬어가는 땅, 라오스 퐁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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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4-20 08:48본문
산정상에 위치한 퐁사리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호수. 물이 귀한 이곳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의 국가는 아열대성기후로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나뉜다.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의 기후도 마찬가지다. 이런 계절적 특성으로 건기에는 걸어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온 종일 내리쬔다. 그나마 라오스는 자외선의 양은 많지만 습도가 적은 편이어서 폭우가 쏟아지는 우기에도 끈끈함이 덜한 편이다.
보통 사람들은 라오스 전체가 일 년 내내 더운지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북부 퐁사리(Phongsali)지역은 아열대성기후와는 별 상관이 없는 곳이다.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4월 중순에도 퐁사리는 아침기온이 섭씨 12도 정도를 가리킨다. 추위에 강하다는 한국 사람도 불어오는 바람으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선선하다.
한 낮에도 잠깐 햇볕이 따가울 뿐 지속적인 더위를 느낄 수 없다. 이는 위도 상 북쪽이라는 점도 있지만 도시 전체가 해발 1300M의 고지대인 영향이 큰 것 같다. 퐁사리는 비엔티안을 출발, 13번 국도를 따라 루앙프라방까지 10시간, 다시 110Km 떨어진 빡몽(Pakmong)을 지나 우돔싸이(Udomxay)까지 6시간이 소요된다. 그곳에서 2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향하다 신사이(Sinsay) 삼거리에서 1번국도로 도로를 갈아타고 퐁사리 길로 접어든다. 자동차로 여행할 경우 신사이 삼거리부터가 문제의 구간이다. 총170Km구간 중 약106Km가 비포장도로라는 것.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한다면 대관령 옛길보다 족히 100배는 더 굽이굽이 고갯길이다.
평균시속 30Km이상 달릴 수 없는 이 길을 따라 퐁사리까지 9시간. 가는 중간에 원주민 마을을 기웃거리며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하루가 부족한 여행길이 된다. 비엔티안에서 아무리 빨리 가도 24시간, 꼬박 만 하루가 소요되는 퐁사리 길은 머나먼 북부 대도시의 종지부를 찍는 곳이기도 하다. 이 먼 길을 따라 가며 만나는 차량은 하루 종일 손에 꼽을 정도.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지역 간 교류가 열악한 곳이 퐁사리를 포함한 우타이(Outhai)와 베트남 국경방향 무앙쿠아(M. Khua)등 북부지방이다. 비행기로 1시간 거리를 자동차로 24시간 이상 가야하는 여정은 때로 여행객들에게 신천지를 찾아가는 것처럼 설레게 한다.
라오스는 국도와 국도를 잇는 기간도로망에는 비석처럼 시멘트로 만든 이정표가 매1Km마다 정확하게 세워져 있다. 그러나 후아판(Houaphan)주 푸라오(Phou Lao)부터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주 빡몽(Pakmong)구간과 퐁사리주 신사이(Sinsai)부터 퐁사리 공항이 있는 본느아(Bounneua)까지 두 구간에는 유일하게 이정표가 없다.
미처 라오스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기후처럼 퐁사리주에는 이국적인 특징이 또 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한문간판이 가끔 이곳이 라오스인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중국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것. 다른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열심히 배운 라오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지역이 또한 퐁사리다. 시장을 가도 중국말이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겨우 라오스 말을 구사하는 필자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도시 분위기가 여느 곳과는 영 딴판이다.
중국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돌 보도블럭이 있는가 하면 외국인여행객들의 구미를 맞춘 식당도 역시 중국인들이 운영한다. 이곳에서 생산한 야채나 과일은 라오스 남부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북부 우타이(Outhai를 거쳐 중국으로 팔려 나간다. 이처럼 경제권역이 다른 것은 중국이 훨씬 가깝고 소비계층이 라오스 사람보다 더 많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어서다.
도시 전체가 비좁은 고지대에 위치한 탓에 건물이나 주택이 계단식으로 형성되어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높낮이 기복이 심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때로는 등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퐁사리는 전력사정이 여의치 않은 탓에 밤마다 제한 송전을 실시하고 물 부족으로 급수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 여행객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퐁사리 주민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쳐흐른다. 이웃한 중국 상인들의 집중매집에 따른 영향으로 농산물생산이 해마다 증가하고 각종 공산품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 라오스 중남부에서 태국 바트화가 모든 경제활동에서 통용되듯이 중국 위안화가 라오스 낍화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퐁사리다. 고립무원의 지형과는 달리 먹거리가 풍부하고 거리에는 우리나라 빅뱅의 노래가 하루 종일 울려 퍼지는 곳. 이런 탓일까? 이곳 사람들은 한국 사람은 몰라도 한국에 대해 세세히 알고 있었다.
퐁사리는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여느 도시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시내 중심가에 비파폰호텔, 퐁사리호텔, 푸파호텔과 5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이용 요금은 호텔 10만낍(11달러), 게스트하우스는 5달러 선이면 숙박이 가능하다. 음식점은 10여개 업소가 관광안내소에 등록되어 있어 섭생에는 큰 불편이 없다.
그러나 현금자동인출기(ATM)가 없어 낍화를 미리 챙기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은 두 곳의 은행도 문을 닫아 라오스 화폐가 없으면 불편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가까운 호텔에 부탁하면 환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수료가 조금 비싸다는 것은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발아래 구름이 보이고 희뿌연 새벽안개가 도시를 감싸는 곳, 풀포기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면 이곳이 라오스가 맞나하는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다. 밤 열시, 제한송전으로 인해 도시가 어두워지면 하늘의 별들이 쏟아지는 퐁사리. 라오스 여행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땅이다.
이명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