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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섬에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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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2-03-08 07:0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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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청산도행 배에 오르며 산뜻한 공기와 맑은 하늘과 불어오는 봄바람을 향해 문득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빨래를 널어놓으면 금세 보송보송하게 마를 것 같은 포근한 햇볕을 받으며 섬으로 떠난다. 오랜만의 섬 여행, 그 첫번째 목적지는 푸르고 푸른 청산도이다.

완도가 품은 2백여 개의 섬 중 여행자들이 입을 모아 아름답다 칭찬하는 곳이 바로 청산도다. 몇 해 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느림의 풍경이 가득한 곳이다. 이 섬의 아름다운 풍경은 걸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제주의 올레와 함께 손꼽히는 청산도의 슬로길은 본래 섬 주민들이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이동로로 이용되던 것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하여 슬로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지금까지 11코스(17개 길)가 마라톤의 풀코스와 같은 길이(42.195킬로미터)로 조성됐다.

하루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1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당리 언덕에서 시작해 화랑포를 지나 2, 3, 4코스와 5코스 중간의 범바위까지 걷는 길(약 14킬로미터)을 추천한다. 쉬엄쉬엄 청산도의 풍경과 함께 걸으면 대여섯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영화 속 그곳’엔 청보리 이제 싹 내밀어

청산도 남쪽의 범바위는 청산도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바위다. 범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청산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여서도와 거문도, 제주도까지 시원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청산도 사람들이 ‘청산의 카리브해’라 부르는 ‘장기미’(기미는 불쑥 튀어나온 지형을 일컫는다)를 지나 다시 섬 중앙부로 올라가면 집마다 석·박사 한명쯤은 거뜬히 배출했다는 학자 마을인 청계리와 만난다.

청산도 남쪽 범바위. 자성이 있어 쇠붙이가 철썩 달라붙는다고 한다.
청산도 남쪽 범바위. 자성이 있어 쇠붙이가 철썩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리고 청계리를 지나면 돌담으로 유명한 상서리와 동촌리 마을에 차례로 닿는다. 2006년 등록문화재(제279호)로 지정된 상서마을 돌담길은 마을 전역으로 1킬로미터 길이로 반듯하고 정갈하게 이어진다.

상서마을에서 동쪽 바다를 향해 달리면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을 촬영했던 신흥리해변이 나타난다. 간조 때가 되면 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드넓은 모래갯벌인 풀등으로 유명하다.

청산도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두고 오기 쉬운 곳은 당리 언덕이다. 무릎높이께의 정갈한 돌담길 양쪽으로는 이제 막 싹이 패기 시작한 청보리가, 꽃대가 올라오려는 유채밭이 있고 돌담길 언덕 위에는 방금 그림엽서에서 튀어나온 듯 보이는 어여쁜 흰 집이 한 채 있다.

한 점 바람에도 바다처럼 크게 일렁이는 다 자란 청보리밭과 가벼운 멀미를 일게 하는 노란색의 유채꽃들은 4월이나 돼야 만날 수 있음에도 이상하게 서운하지 않다.

그저 지금 눈앞에 보이는 푸른 언덕 위 하얀 집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마치 내게로 달려오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돌담길과 저 아래로 펼쳐진 짙은 청록의 바다만으로도, 마치 순수한 얼굴의 어린 계집아이가 예쁘게 눈웃음을 짓는 느낌이다. 이 집은 드라마 <봄의 왈츠>에 등장했던 집이다. 꽤 오래전에 사용했던 세트임에도 깨끗하게 잘 보존돼 있다.

황톳길 시작점에는 <서편제> 촬영에 사용된 초가집이 복원돼 있는데 이 집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가히 청산도 최고의 것이다. 언덕 아래 급격한 경사면을 따라가면 아담하고 운치 있는 도락리 마을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지붕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곧장 바다가 펼쳐진다.

청산도에 대해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찾아내는 것이 이 섬 여행의 묘미라고 설명한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이곳의 풍경들이 왜 그렇게 유별나게 마음에 남는 것인지는 말로 설명할 방법은 없을 것 같다. 그저 이 섬에 발을 들여놓는 수밖에는.

청산도 당리언덕 아래에서 이 섬의 유일한 일하는 누렁소가 밭을 갈고 있다(사진 위). 청산도 상서마을 돌담길.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아래 왼쪽 사진). 보길도 남쪽 공룡알 해변의 봄 정취.
청산도 당리언덕 아래에서 이 섬의 유일한 일하는 누렁소가 밭을 갈고 있다(사진 위). 청산도 상서마을 돌담길.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아래 왼쪽 사진). 보길도 남쪽 공룡알 해변의 봄 정취.
 
완도에서 보길도로 가는 길에는 노화도가 선물처럼 따라온다. 보길도와 노화도는 연륙교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의 노화도 동천항에 내리면 또 다른 섬 여행이 시작된다.

노화도 앞바다엔 전복·미역 양식장 그득

노화도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다 위를 빽빽하게 수놓은 전복 양식장과 미역, 다시마 양식장임을 알려주는 부표들이다. 어쩌면 그리 바다를 알뜰하게 사용하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그 모양이 마치 물 위에 네모나게 자른 김을 빈틈없이 띄워 놓은 것 같다.

완도 바다 전역이 전복 특구인데 언뜻 보기에도 노화도의 전복양식은 유난히 활발하다. 섬의 동쪽에 있는 미라리는 완도에서 최초로 전복양식을 시작한 곳이라 알려져 있다. 실제로 노화도를 포함한 완도에서 생산하는 전복은 전국에서 유통되는 전복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전복의 먹이가 되는 미역과 다시마가 풍부하고 전복이 잘 자랄 수 있는 청정한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섬의 내륙 쪽으로는 갈대가 숲을 이룬 곳들이 종종 눈에 띈다. 4백 년 전 처음 소금을 생산했고 최근까지도 여름이면 소금을 만들었다는 노화염전 주변은 온통 흐드러진 갈대밭이다. 갈대숲의 노래에 취한 섬사람들은 갈대 노(蘆) 자를 써 섬의 이름을 붙였다.

노화도의 동쪽 당산리 앞 바다는 매달 사리 때면 1킬로미터의 바닷길이 열려 노록도까지 길이 열린다. 갯벌이 드러나는 날이면 섬사람들이 이 길 위에서 소라와 꼬막, 바지락 등을 주워 저녁상에 올리곤 한다.

노화도 바다에 평야처럼 펼쳐진 전복과 미역, 다시마 양식장.
노화도 바다에 평야처럼 펼쳐진 전복과 미역, 다시마 양식장.
 
보길도는 섬 곳곳에 고산 윤선도가 남긴 문학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다. 병자호란과 지겨운 당쟁을 피해 제주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잠시 머문 보길도에서 그는 어쩌면 ‘옳거니’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그 길로 이 섬에 들어앉아 고산은 섬 여기저기에 꽤나 은밀한 작업들을 벌였는데 그것이 바로 보길면 일원에 흩어져 있는 윤선도 원림이다.

윤선도 원림 중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부용동정원. 고산의 놀이공간으로 시냇물을 막아 호수를 만들고 뱃놀이를 즐겼던 세연지와 사방의 문을 모두 들어올리면 세연지의 멋진 풍광을 사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정자인 세연정, 그리고 정원 곳곳에 심어놓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경치가 대단하다.

(부유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아낌없이 돈을 써 멋진 정원을 만들고 고산은 이곳에서 기꺼이 한량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며 시를 읊었다.

고산 윤선도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는 보길도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라 평가받는 <어부사시사>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부용동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낙서재’와 ‘동천석실’이 있다.

고산의 주거공간이었던 낙서재에서 윤선도는 달 밝은 밤이면 거북 모양의 바위(龜巖, 올해 2월 실물이 발견됨)에 올라 달구경을 했다. 또 낙서재 위쪽 언덕에는 동천석실을 짓고는 부용동을 한눈에 바라보며 더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보길도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깻돌’(갯돌)이라 불리는 검푸른 조약돌과 울창한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예송리해변과 솔숲과 어우러진 작고 아담한 은빛 백사장이 무척 아름다운 통리해변,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큰 돌들이 드넓게 펼쳐진 공룡알해변은 저마다 독특한 해변의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예송리해변에 앉아 자글자글 갯돌을 지나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면 그 옛날 윤선도의 풍류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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