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명사칼럼



도선대사님의 답산가(踏山歌)에 담긴 뜻과 노고산 비득재와 부소천이 전하는 대한겨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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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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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21포럼 대표 김창호

세계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변혁기의 역사이다.  
변화에는 언제나 위기가 뒤따른다.  
그런 시대일수록 영웅호걸이 등장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인류문명사적인 변혁기, 경제사적인 변혁기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이 곧 기회이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의 시대를 열 자산을 찾고 지혜를 찾아 극대화시켜 나가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경기도의 명승지로 한강과 한탄강의 발원지가 되는 노고산 비득재와  ‘부소천’은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다. 
도선대사님의 답산가(踏山歌)에는
"송성(松城)이 떨어진 뒤에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삼동(三冬)에는 해 뜨는 평양(平壤)이 있도다. 
후대의 현사(賢士)가 대정(大井)을 열매 한강(漢江)의 어룡(魚龍)이 사해(四海)에 통하도다."  라 하였다.
이 구절에 따라 고려 문종은 양주에 남경을 설치했고, 숙종은 개혁정책으로 남경천도를 시도했으며, 조선 태조와 정도전은 한양을 수도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도선의 답산가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또 달리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도선대사와 관련이 깊은 한강일대는 지금의 광릉숲과 연결되는 한강과 한탄강의 발원지가 되는 노고산에서 시작하여 흐르는 강줄기 지역이며 실례로 신라 헌강왕 3년인 877년 포천의 왕방산에 왕산사를 창건한 것을 비롯해 많은 사찰을 창건했다. 
광개토태왕의 호태왕릉비와 역사서에 의하면 영락6년조 백제의 58개성을 점령하고 그 지역에 「마홀(馬忽)군」을 설치하고 관아를 고모루성(古牟婁城)에 두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생긴 「마홀(馬忽)」이라는 지명은 이두식 한자로 맞옮김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홀(馬忽)을 분석하면 마(馬)+홀(忽)로 볼 수 있다.  마(馬)는 고구려시대에 물(水)을 나타내는 매(買)일 가능성이 크다. 
즉 매(買)와 마(馬)의 신라시대 발음은 두 글자가 같이 물(水)을 의미한다.  
홀(忽)은 고구려의 지명에 붙은 접미사로 신라시대에 성(城) 또는 골(谷)의 한자로 변환시킨 것으로 보아서 그 뜻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마홀(馬忽)이란 지명을 재구성하여 보면 ?? 물골?? 즉 현재의 지형에서 알 수 있다시피 ‘물이 많은 고장' 이란 뜻으로 추정된다된다고 이전의 사료는 밝히고 있으나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물이 발원한 땅‘이라고 보아야 맞지 않을까 싶다. 
실례로 노고산의 비득재와 축석령에서 발원한 물이 북과 동쪽으로는 흘러가 한탄강을 이루고 임진강을 이룬 뒤, 남과 서쪽으로 흘러간 물과 한강에서 만나 황해로 흘러가 사해를 평정하지 않는가?.  
세종실록 지리지를 정리한 포천향토사료총람 144페이지와 145페이지에 양주도호부편에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인데, - 중략 - 고구려 장수왕이 와서 한성(漢城)을 에워싸니, 개로왕이 달아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되매, 이 해에 그 아들 문주왕이 도읍을 웅진(熊津)으로 옮기었다. 
또 136페이지 “포천현의 무둔산(無屯山), 주엽산(注葉山), 웅전산(熊前山)”에 나오는 웅전산은 어느 산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일제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나타낼만한 지명은 모두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일제가 1925년 농업용이라며 인공호수를 축조한 산정호수 주변 하천의 이름은 ‘부소천’이다. 
북한에서는 1994년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평양 근교에 단군릉을 조성하면서 네 아들의 석조상을 세웠는데 첫째가 부루, 둘째 아들이 부소, 셋째 아들이 부우, 넷째 아들이 부여로 되어 있다. 
단군의 둘째 아들인 부소는 부싯돌을 만들어 불을 일으키는 법을 백성들에게 전했으며 이불로 숲을 태워 돌림병과 맹수와 독충을 태워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인간의 소망을 하늘로 실어다 주는 주술적 기운으로 인식되었다. 
또 불은 모든 생명력의 근본이 되는 힘으로 만물을 순화하고 재생시키며, 따뜻함과 광명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불을 만들어 숲을 태워 맹수를 죽이고 돌림병을 잠재웠으며 그 부싯돌을 전해준 ‘부소’라는 이름의 하천이 있던 곳에 일제가 인공호수인 ‘산정호수’를 만든 것은 분명 역사에 우리가 풀어내야 할 기막힌 인연의 ‘수수께끼’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제가 농업용수가 필요한 그 많은 곳 중에 일본인이 많이 살지도 않는 산골짜기에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호수를 축조한 것은 우리 역사 유적을 왜곡시키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더욱이 이 일대에는 단군신화를 연상시키는 지명과 특징이 많지 않은가?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의 ‘곰마을’, 소흘읍 노고산의 ‘곰바위굴(일명 노고바우)’이 있는 주변에는 쑥의 일종인 ‘곰취’와 ‘구절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 
또한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틀못이의 ‘동홰놀이’는 모든 부정한 것, 불의의 모든 것을 태워 없애고, 재생시키고, 정화하는 생명력을 지닌 행위가 아닐까? 
즉, 우리 민족은 기후적으로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한강과 한탄강지역에 처음 살았으나 인구가 증가하고 철원과 평강 등지의 화산폭발로 인해 남과 북으로 퍼져 나가서 일본 민족을 이루기도 하고 몽고족을 이루기도 하고 흉노족을 이루기도 하였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도 있다. 
왜냐하면 기후나 자연 환경적으로 좋은 곳에서 사람이 먼저 정착생활을 하고 문명을 꽃피웠다고 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한탄강 유역에서 발견된 주먹 돌도끼는 아시아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전기 구석기 문화권을 기존의 주먹도끼 분포지역인 '선진유럽 아프리카'지역과 자갈도끼 분포지역인 '후진 아시아'지역으로 구분한 미국 모비스 교수의 논리를 뒤집는 중요한 근거였다. 
더 나아가 한탄강과 한강 유역이 인류문명의 발상지였으며, 아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유추해내기에 충분한 유물이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정리해 보면 지금의 경기도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한탄강을 남으로는 한강을 둔 지역은 태초에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환경과 지역적 환경을 가졌던 곳으로 인류문명이 발생한 곳이며 도시국가의 문명이 꽃피웠던 곳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화산이 폭발하는 등 자연환경의 변화로 여러 차례의 남과 북으로 인구의 이동이 시작하여 남으로는 일본열도로 동쪽으로는 알레스카를 건너 아메리카로 북으로는 몽골평원을 건너 시베리아와 지중해까지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은 북쪽에서 남으로 이동하였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태초에 온난하고 비옥한 토지를 나두고 추운 동토에서부터 살았을리 없다. 
일각에서 태초에 문명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큰 강은 항상 범람의 위험을 안고 있다.  태초에 인류문명이 발달하기에 적합한 하천은 왕숙천, 중랑천, 한내천, 영평천, 부소천과 같은 규모의 하천유역이다. 
부소천의 부싯돌과 주먹돌도끼가 세월에 흘러가 전곡리의 한탄강가에서 발견된 것은 아닐까?
노고산 비득재와 축석령에서 발원한 물이 한탄강으로 흘러가고, 한강으로 흘러가 4해를 평정하는 대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세조실록 31권 9년 10월 22일 (정미) 005 / 병조에서 함부로 벌석하는 자를 위제율로 다루게 할 것을 아뢰다 부분을 읽노라면 광릉을 향해 앉아 있는 노고산 곰바위(일명 노고바우)가 떠 올려지기도 한다. 
이 지역의 문화유적를 보존시켜 후대에 전하기 위해 이러한 교지를 남기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병조에 이러한 교지를 내렸다는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미리 예측한 것은 아닐까?  세조대왕은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것 보다 더 큰 안보는 없다고 여기지 않았나 싶다. 
훈민정음창제도 어찌 보면 실질적으로 세조대왕이 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대의 업적은 모두 왕에게 귀속되기 마련이고 실례로 수양대군과 집현전 학사들간의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일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13도창의군 창설 112주년과 서로군정서 창설 100주년을 맞아 이러한 의미가 담긴 문화유산과 예술적 행위를 지키고 정신을 복원하여 세계 평화와 인류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것이다. 
강과 하천의 골재와 모래를 사용하게 되면 산림을 훼손시키지 않아도 되고 세조대왕께서 위제율로 정한 벌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조실록 31권 9년 10월 22일 (정미) 005 / 병조에서 함부로 벌석하는 자를 위제율로 다루게 할 것이다 한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도선대사님의 답산가(踏山歌)에 담긴
"송성(松城)이 떨어진 뒤에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삼동(三冬)에는 해 뜨는 평양(平壤)이 있도다. 
후대의 현사(賢士)가 대정(大井)을 열매 한강(漢江)의 어룡(魚龍)이 사해(四海)에 통하도다."  라 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길이 될 것이다.
글 : 광릉21포럼 대표 김창호

김창호 (金昶澔)
군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밴쳐비지니스 연구과정 수료
포천문인협회 이사, 포천예술 및 포천문화 편집위원 역임
현 백제문학 소설분과장
현 광릉21포럼 대표, 광릉숲 문화예술 밴드 리더
 저서 2인 시집“너랑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내겐 천국이었어” 학영사와 소설집 광릉숲 등과 다수의 공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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